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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의 날(Green Apple Bookstore)

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by Aprilamb

'Independent Bookstore Day'는 미국에서 개최되고 있는 인디 서점들 만의 축제이다. 작년(2015) 샌프란시스코 의 ‘Green Apple Books’에서 ‘California Book Store Day’를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고, 올해는 미국 전역 400개의 서점이 참여하는 큰 행사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인터넷을 확인하니 행사 당일에는 작가의 서명이 된 한정판 서적이나 일러스트들을 판매하는데, Anthony Bourdain이라는 셰프의 ‘Perfect Burger Print’라는 햄버거 레시피 브로마이드를 보는 순간 너무 탐이 났다. 그는 고정 방송 활동도 오래 했고 ‘The Big Short(2015)’이라는 영화에서도 모습을 볼 수 있는 유명한 셰프라고 하지만, 요리에 대한 별 지식 없는 내겐 그냥 깐깐해 보이는 백발 노인네 같아 보일 뿐이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셰프가 감수한 레시피이니 언급한 재료를 사다가 그림대로 슥슥 따라 만들면 쉽게 소살리토의 ‘Hamburgers’ 같은 햄버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귀여운 ‘Perfect Burger Print’ 일러스트


마침 토요일이고 집 근처에 ‘Green Apple Bookstore’가 있기 때문에 천천히 가보기로 했다. 캘리포니아의 1번 뮤니(버스)는 내가 사는 곳을 중심으로 골든게이트 쪽의 해변과 다운타운을 연결해주고 있는데, 여러 뮤니 중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다. 보통 평일에 다운타운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주말에도 심심하면 집어 타고 가다가 대충 맘에 드는 거리에서 내리기도 한다. 이 서점도 버스에서 잠시 조는 바람에 집에 내리지 못하고 한참 지나쳐 가다가 알게 되었었는데, 이정도면 인생이 줄창 우연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왼쪽은 중고서적과 신보/중고음반(LP,CD),DVD,블루레이를 구매할 수 있고, 오른쪽은 신간서적을 위주로 판매한다


‘Green Apple Bookstore’는 1967년 부터 중고 서적, 만화, 내셔널지오그래피 등을 판매했다고 하는데,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피는 - 사진만 봐도 재미있기 때문에 - 나도 어렸을 때부터 참 좋아하던 잡지라서, ‘아 잘 먹혔겠는걸?’하면서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그 이후 새책도 판매하기 시작하고, 리볼버 레코드 인수 후 음반 판매도 시작하여 지금처럼 많은 콘텐츠를 다루게 되었다.

좁은 복도 양 옆으로 빽빽하게 책들이 꽂혀있는 앤틱 한 서점 내부는 마치 해리포터의 세트장 같은데, 최신 서적은 물론이고 중고서적, 음반(CD, LP), DVD, 블루레이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준비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잠깐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 서점을 방문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은데, 자신도 모르게 약속시간이 훌쩍 지나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행사장 앞에서는 즉석으로 일러스트를 그려 판매한다. 여러가지 질문도 가능하지만, 답변이 친절하지는 않음.


이날은 행사날이라 그런지 입구에서부터 직접 일러스트를 그려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 곳 토박이가 아니라 미안하게도 누구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물론 그림은 슥슥 잘도 - 비꼬는 거 아님 - 그리고 있다. 손이 엄청 빨라 신기해서 구경하고 있는데, 이곳 토박이 같은 할아버지가 다가오시더니 그림 그리시는 분께 이런저런 말을 건네기 시작하신다. 바빠 죽겠는 사람에게 ‘오늘 날씨 좋은데요?’부터 시작해서, ‘매일 이런 그림을 그리는 건가요?’ 등등 느릿느릿 계속 질문을 해댄다. 일러스트레이터는 당일 그려내야 하는 양이 많아서 그런지 도화지만 쳐다보면서 대충 대꾸하는게 영 성의가 없다. ‘매일 이런 날씨인데요 뭐’라던지, ‘이게 직업이니 당연히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고 있죠’ 이런 식이다. 나 같으면 ‘뭐 이래?’하면서 서점으로 얼른 들어갔을 텐데, 외로운 분인지 답변이 성의가 없던 말던 상관하지 않고 계속 질문을 하신다.


서점 안에 들어가니 평소보다 사람이 서너 배는 많은데, 이 많은 사람들이 행사를 어떻게 알고 왔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물론 나처럼 서점 홈페이지에 들렀다가 배너를 보고 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고대 도서관같은 낡은 서점을 즐겨 방문하는 사람들은 인터넷과는 거리가 멀 것 같기 때문이다. 너무 궁금했지만 나는 샌프란시스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에게 미소를 씩 건네며, ‘대체 이 행사를 어떻게 알고 온 거예요?’라고는 정말 물어볼 수가 없다. 사실 샌프란시스코 사람이었다고 해도 물어보지 못했을 것 같다.


행사 서적에는 모두 확실히! 서명이 되어있다


서점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왼쪽 벽에는 인터넷에서 봤던 오늘 판매되는 한정판 서적과 일러스트를 전시해 두고 있었다. 몇 권 직접 살펴보았는데 안쪽 깊숙이 박혀있던 책들까지도 모두 작가가 서명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이걸 왜 확인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전시물 중에 사고 싶었던 햄버거 일러스트가 없길래 물어보니 그건 오늘 오전에 오픈하자마자 제일 먼저 다 팔렸다고 한다. 역시 인종에 상관없이 사람이라면 먹는 것에 사족을 못쓰는 건 똑같은가 보다.

왠지 사지 못하게 되니 더 갖고 싶어 져서 근처 20블록 정도 떨어져 있는 다른 ‘Green Apple Bookstore’에 가볼까 - 이 서점은 샌프란시스코에 두 개 있다 -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 곳에서 오픈 하자마자 다 팔렸으면 다른 곳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다른 한정판 서적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옆의 점원이 숫자가 적힌 표를 나누어 준다. 매시간 추첨을 하는데 당첨되는 사람에게는 100불 상당의 서적 교환권을 준다고 한다. 받아 넣고는 다시 행사서적 책꽂이 틈새에 ‘햄버거 일러스트’가 떨어져 있지 않을까 살펴보고 있는데, 조금 전 그 점원이 갑자기 내게 다시 숫자가 적힌 표를 내민다. 받은지 십 분도 안 지났는데 내가 그렇게 존재감이 없나? 하지만, 나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미 받았다고 정중히 거절하고는 2층에 올라가서 보드게임과 할인 서적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피커에서 당첨자 발표가 흘러 나온다.


당첨자는 299007입니다. 해당 번호표를 가지고 계신 분은 카운터로 내려와 주세요


순간 너무 놀랐는데 저 번호는 내가 받아 가지고 있는 번호표보다 5가 더 많았고, 그건 바로 그 순진해 보이는 점원이 두 번째로 내게 건넨 번호표였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렇게 양심이 깨끗해서 이런 수난을 겪어야 하는 거지? 심지어는 그 번호표를 가진 사람이 없다는 방송이 나온다. 아마 그 점원이 내게 건넸다가 이미 받았다는 소리에 창피해서 그냥 씹어 먹어버렸을 수도 있다. 어쨌든, 두 번 더 다른 번호가 호명되고, 세 번째 번호가 호명되었을 때 1층에서 서너 명이 흥분된 목소리로 ‘와우!’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고, 당첨된 사람은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쳐대고 있었다. 감사하겠지 남의 행운을 가로 챘으니 말이다.


2층의 책꽂이 위에 전시되어 있는 ‘Life’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1층으로 내려오니 아까 그 점원이 다음 추첨을 위해 새로운 번호표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정문 앞에는 아직 그 아주머니(?)가 공장에서 벽돌을 찍듯 일러스트를 그려내고 계셨고, 바깥에는 캘리포니아의 오후 다운 햇살이 가득했다.


시대는 변하고 Green Apple Bookstore도 온라인에서 e-book을 판매하기 시작했지만, 책 표지나 판형이 예뻐 책을 구매하기도 하는 그런 시대가 조금은 더 오래 지속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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