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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아침의 댄스파티

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by Aprilamb
아침은 간단하게 집에서 먹는 편이었다



보통은 크로와상에 베이컨을 굽고 계란을 얹어 샌드위치를 만들거나, 만두를 튀겨 먹거나 했기 때문에, ‘아침으로 뭐 먹었어?’하는 질문에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 처음 소파를 사면 앉고, 눕고, 자며 그 근처를 떠나지 않다가도, 조금 익숙해지면 시들해지는 것처럼 - 점점 뭔가 해 먹는 것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이후로 평일 아침은 시간도 없고 해서 별생각 없이 스타벅스에서 해결했는데, 주말은 상대적으로 한가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뭘 먹을지 고민하게 된다. 브런치 레스토랑은 혼자 가서 테이블 하나 다 차지하는 것도 민망하고, 식사 다 한 후부터 계산 하기까지가 너무 오래 걸리는 것도 별로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은 가격도 괜찮고 매장도 깨끗해 자주 이용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 블록 건너 스타벅스가 넘쳐나는 한국과는 달리 - 프랜차이즈점이라 해도 매장들이 숨은 그림 찾기 정도의 느낌으로 도시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는 편인데, 집 근처에 있어 자주 이용하는 ‘Noah’s New York Bagles’도 샌프란시스코를 다니다 보면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뉴욕이라면 더 자주 볼 수 있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Nova Lox’라는 연어 베이글 샌드위치가 생각나서 이 곳에 가기로 결심했다. 이 메뉴는 베이글을 내가 직접 고를 수 있기 때문에, 늘 취향대로 달달해 보이는 것을 골라 주문하곤 한다. 가격은 8불 정도로 저렴하지는 않지만, 사이드로 칩, 과일, 코울슬로 중 하나가 추가로 제공되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팁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게 마음에 드는데, 개인적으로 서비스 비용이라는 것이 참 애매하고 불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팁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자면, 메뉴에서 본 금액이 내가 지불해야 하는 정확한 금액이 아닌 것도 별로지만, 그것 보다도 계산기도 주어지지 않은 채로 전체 금액의 15%를 계산하고 이를 가격에 더해 적어야 하는 게 생각보다 귀찮다. 아니 귀찮다기보다는 어려워. 가끔 스탠딩 포스에서 계산을 할 때에도 팁을 받는 곳이 있는데, 이럴 때는 ‘미안한데 그냥 취소하면 안 될까요?’하고 싶어 진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예측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점원들도 주문을 받으면 뒤쪽에 전달부터 하고 계산을 도와준다.


네가 주문한 건 이미 오븐에 들어갔거든. 이제 산수문제 풀 시간인걸? 제한 시간은 20초 줄게.


하는 표정으로 싱글싱글 거리고 있는 점원을 보면 신용카드를 얼굴에 집어던지고 싶어질 때도 있는데, 이 곳은 그러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매장 중의 하나인 것이다.


서울에 있을 때에는 플레인 베이글만 보다가 이 곳의 진열장에서 수십 종류의 베이글을 보고 있으면 뭔가 다른 세상에 와있는 느낌이다. 식사를 위한 빵들이라기보다는, 각각 용도가 다른 탐사용 우주선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오늘 아침도 느긋하게 샌드위치를 시켜놓고 빈둥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꽤 많다.

테이블 옆에서 꼬맹이가 갑자기 발레를 추기 시작하고, 주문을 마친 어느 숙녀 한 분은 갑자기 흘러나오는 플라멩코 음악에 신 들린 듯 엉덩이를 흔들어 댄다. 처음에는 이런 장면이 낯설었지만, 이제는 ‘뭐 샌프란시스코니까’ 하게 된다. 물론 조용히 주문하고 가만히 앉아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갑자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여자가 자기 테이블 위 컵을 엉덩이로 치는 바람에 바닥이 오렌지 주스 천지가 되었는데, 점원이 ‘걱정하지 마. 내가 치울게’하면서 화장실에서 청소도구를 들고 나오다가 타이핑을 하고 있는 나를 쳐다보더니,


나는 너를 존경하고,
네가 식사가 맘에 들었으면 좋겠고,
커피가 식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나는 네가 싫기도 해.
… 넌 타이핑이 너무 빨라.
농담이야.


이렇게 랩 하듯 쏟아내고는, 바닥을 치우기 시작한다.


괜찮다. 여긴 샌프란시스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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