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웨스트 포탈 근처는 대부분 주택가인데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면 미국 답지 않게 거미줄같이 늘어져있는 길들 사이로 예쁜 집들이 늘어서 있다.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쪽과는 다르게 개중에는 정원이 있는 집들도 많아 발랄한 미국 드라마를 보는 느낌으로 걸어 다닐 수 있는데, 유일하게 메인 스트리트인 웨스트 포털 애비뉴를 따라서만 여러 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다.
뮤니의 웨스트 포털 스테이션에서 바깥으로 나오면 큰 삼거리가 보이는데, 맞은편에 보이는 가장 넓은 길이 웨스터 포털 애비뉴이다. 이 거리에는 장난감 매장들도 많고 코믹스 전문점도 있어 아이들과 함께 이 거리를 걸어 통과하는 것은 쉽지 않을 지도 모른다.
역을 따라 한 오분 정도 걸으면 Independent bookstore 사이트의 가맹점인 'BookShop West Portal’이라는 서점이 있는데, 규모는 일반 로컬 서점 정도로 아담하다. 하지만, 그 오른편에는 LP와 CD, DVD를 파는 다른 매장도 나란히 있어서, 취미가 독서와 음악 감상인 사람들이라면 한 번에 원하는 쇼핑을 모두 끝낼 수도 있다.
이제는 'Book shop'이야기.
나는 서점에 가면 처음에 ‘어떻게 섹션을 나누어 관리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버릇이 있다. 물론 그다음에는 책들을 어떻게 진열해 두었는지 구경하게 된다.
오프라인 서점의 가장 큰 장점은 고객에게 구매하고 싶은 책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구매하고 싶은 책을 찾아 주는데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실제로 책을 만져보거나 맘에 드는 제목의 책을 바로 꺼내 훅 넘겨보며 쉽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의 제안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책을 구매하는 것이 가능하다. 상대적으로 온라인 서점은 이미 구매하기로 결정한 책을 구매하는 데에는 편리하지만, 이 책 저책 들여다보면서 ‘뭘 살까?’하는 쇼핑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섹션을 나누고 책꽂이에 책을 배열하는 작업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고객에게 책을 큐레이팅 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다. 이런 분류들을 잘 해놓은 서점에는 고객들이 책꽂이 사이를 누비며 오래 머무르게 되고, 그렇지 않은 곳이라면 입구 앞의 베스트셀러 섹션만 휙 보고 떠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서점에서 다른 매장에서는 쉽게 받을 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바로 가로 세로로 빽빽하게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하여 진열해 놓은 책들 때문이다. 형형 색색의 책들이 어떤 책들은 표지가 보이도록, 어떤 책들은 제목만 보이도록, 혼란스럽지만 통일된 모습으로 나란히 책꽂이에 꽂혀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끔은 마치 책들이 해당 책꽂이에 함께 꽂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처럼 경이스럽게 정렬이 된 곳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정말 정리한 사람이 누구인지 한 번 만나보고 싶어 진다.
이 서점의 여행 코너에서 ‘한국인의 특성’에 관한 설명을 한 권 내내 하고 있는 책을 발견했는데,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 옆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꽤 오랫동안 읽고 말았다. ‘우정’, ‘체면’, ‘부끄러워하는 습성’등을 발음 나는 대로 적고, 다시 이를 풀어 설명하는데 한국인인 입장에서 보면 꽤 재미있다. 물론 틀린 내용들은 아닌데 어느 정도 과장이 되어있어 이 책을 보는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은 참 희한하구나.’ 할 것만 같다.
그중에서 ‘한국의 국가적 슬로건(Korea’s National Slogan)’이라는 소제목이 있길래 이게 뭔가 궁금해서 읽어봤더니, 한국에서는 ‘열심히 합시다!’라는 범 국민적인 슬로건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게 국가적 구호였다니 적어도 나는 몰랐다. 그래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한국인들은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야.’한다면 나쁜 일은 아닐 것 같긴 하다.
책꽂이 사이를 들여다보다 보면 그림과 글이 섞여 있는 예쁜 책들이 꽤 많은데, 이런 책들은 한번 손에 들면 다시 놓고 자리를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건 온라인 서점에서는 경험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샌프란시스코의 인디 서점들은 현재도 아마존이라는 강력한 상대의 공격을 견디어 내며 게릴라전을 지속하고 있는데, 대형서점인 반스 앤 노블도 2010년 말 샌프란시스코에 남아있던 마지막 매장을 철수한 것을 보면 이들의 생존은 더욱 경이롭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디 서점들이 오프라인 서점만의 장점을 잘 찾아내고 발전시켜 샌프란시스코 뿐 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더욱더 많은 서점들을 길거리에서 만나보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