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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문화의 산실 CityLights Bookstore

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by Aprilamb

콜럼버스 애비뉴는 피셔맨스 와프 쪽에서부터 Financial District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거리이다. 피셔맨스 와프 쪽에서 이 길을 따라 내려오면 처음에는 좀 황량한데, 차이나타운과 만나게 되면서 여러 음식점이나 카페 등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세련된 분위기는 아니지만 나름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 거리가 끝나기 두 블록 전쯤 멋진 벽화를 업고 있는 'City Lights Bookstore'를 만나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남아있는 서점들이 대부분 역사가 있는 오래된 서점들이지만, 이 서점은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독립서점이다. 1953년 시인인 로렌스 펄링게티와 사회학자 피터 D. 마틴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하는데, 미국의 비트 세대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장소 중 하나이다. 이 서점은 서적을 독립적으로 출판하기도 하는데, 지금도 일반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독립 서적들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시티 라이츠에서 직접 발간한 책들을 읽고 있는 어떤 손님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카운터 옆쪽으로 낮은 천정과 어울리는 아담한 책꽂이들에 빼곡하게 여러 종류의 책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새책을 판매하는 곳인데도 왠지 낡은 고서점을 방문한 것 같은 정겨운 느낌을 받게 되는데, 첫 번째 섹션으로 진입하면 바로 시티 라이츠에서 직접 제작한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신간의 경우에는 신간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간단한 설명을 인쇄해 붙여두었고, 스탭들이 추천하는 책들에는 선정한 사람의 이름과 함께 핑크색의 꼬리표를 함께 붙여두고 있다.


'Night Sky' - Dorien Ross


이 책꽂이에서 Dorien Ross라는 작가의 'Night Sky'라는 에세이집을 꺼내 들었는데, 우연히 펼친 곳의 챕터 하나가 모두 젖꼭지에 관련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다지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 소재로 몇 페이지를 계속 이야기할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역시 히피 세대 작가 답다. 물론 이 책은 시티 라이츠 서점에서 출판했기 때문에 아마존에서는 구매할 수가 없다.


Staff 이 선정한 오노 요코의 'Grapefruit'


존 레넌의 그녀인 오노 요코의 'Grapefruit'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 책은 그녀의 개념 미술을 설명하기 위한 책으로 초판이 무려 $1,700불에 거래되고 있다. 물론 서점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2000년에 인쇄된 하드커버 판이고, 15불이면 구매할 수 있다.(이 책은 아마존에도 있다) 15불이면 그리 싼 가격은 아니지만, 초판 가격을 들으니 왠지 거저라는 생각이 든다. 첫 페이지를 넘기면 존 레넌이 '안녕! 내 이름은 존 레넌이야. 오노 요코를 만나고 싶어'라고 적어놓은 인사말이 보이는데, 그 부분이 책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진열되어 있는 인디 시집들


다음 섹션으로 들어가면 여러 종류의 인디 시집이나 서적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페이지도 얼마 안 되고 영 조잡해 보인다. 미국은 코믹스 전문점에 가도 정식 퍼블리싱된 코믹스 외에도 동인지 스타일의 인디 코믹스도 상당히 많이 전시되고 있다. 어쨌든 나는 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구경하는 중에 어떤 여자 손님이 들어와서 뒤적뒤적 대더니 두 권 집어 들고 카운터로 종종 걸어간다.


아 정말 너무 귀여워! 그런데, $7 밖에 안 하잖아. 거저야!


이런 걸까? 나도 몇 장 끄적여서 이 곳에 판매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 영어로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바로 마음을 접었다. 적어도 이 작가들은 영어만큼은 엄청 잘하는 것이다.


이 서점은 3층까지 모두 책으로 꽉 차있는데, 2층에는 로렌스 펄링게티의 작업실도 구경할 수 있다. 작업실이래 봤자 뭐 뻔한 책상과 의자가 전부지만, 그래도 이런 것들을 잘 보관해두는 것은 우리도 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라는 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세월이 주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거리의 골목이나 간판 같은 별 것 아닌 것 같은 장소나 물건들도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면 수십수백 명의 추억이 깃들어진 영혼을 갖게 된다. 꼭 역사적인 동상이나 건축물 몇 개만이 특정 도시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건물, 거리, 가로등 하나하나가 모두 조금씩 힘을 합쳐 그 장소만의 특색을 만들어내고 색깔을 입히는 것이다.


이 서점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샌프란시스코의 과거 속을 여행하다가, 갑자기 모두 때려 부수고 새로 더 예쁘게 짓는데만 열중하는 우리가 생각나 가슴이 조금 답답해졌다. 우리도 보다 많은 것들이 지켜지고 사랑받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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