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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May 21. 2016

하루 종일 돌려 듣는 노래

새벽 가로수길(Feat. 송유빈) - 백지영


대학 때 음악동아리 연습이 끝나고 술을 마시러 가면 늘 누군가는 통기타를 들고 갔었습니다. 학교 근처의 주점들은 저렇게 기타를 치고 떠들어도 괜찮았었거든요. 사람 많을 때는 신나는 노래만 떼로 불러대다가, 하나 둘 씩 집으로 가면 남은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저렇게 모였습니다. 취해서 코드도 대충 잡았던 것 같고, 음을 제대로 잡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먼저 간 사람들이 야속했는지 남은 모습이 처량했는지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 불렀던 노래들이 있습니다.


그때가 생각나는 노래가 백지영의 '새벽 가로수길'입니다



한 노래 안에 서너 개의 장르를 집어넣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편곡이 되어버렸고, 조를 바꾸거나 전개가 다른 클라이맥스를 두세 개씩 집어넣는 것도 요즘은 특별한 전개가 아닐 겁니다. 십여 명의 걸그룹 멤버들의 개성을 모두 살려줘야 하고, 이미 히트했던 과거곡들을 그만큼 다시 사랑받을 수 있게 편곡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구성에 익숙해진 작곡자와 편곡자들은 이제 곡에 여백을 허락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비어 보여도 샘플링을 깔고, 억지로 랩을 얹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새벽 가로수길'은 조금 다릅니다.


송유빈의 숨소리와 바로 들어오는 함춘호의 기타로만 시작되는 이 곡은 특이하게도 후반부의 송유빈 솔로 브릿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같은 멜로디가 반복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신경 쓰고 듣지 않으면 일반 곡들과 크게 차이를 느낄 수 없는데요. 백지영과 송유빈의 탁월한 감정이입으로 조절되는 애절한 보컬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 곡은 세션들의 완성도 높은 연주도 크게 한몫하고 있는데요. 싸비(클라이맥스) 위치에서는 기타, 피아노 외에 베이스와 스트링이 적절한 볼륨업으로 다른 부분과의 차별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 위쪽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으며 성실하게 보컬을 따라 밟아주는 함춘호의 기타와 몸을 움직이는 리듬을 정석대로 깔아주는 이태윤의 베이스, 필요한 곳에서 임팩트 있게 등장하는 길은경의 피아노와 스트링까지 정말 모든 악기들이 한 사람의 가슴으로 연주하는 것처럼 곡의 감정선을 잘 뒷받쳐주고 있습니다.


명불허전 애절한 백지영의 보컬은 이 곡에서도 변함없이 빛을 발하고 있네요. 누가 뭐래도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비브라토를 하는 가수니까요. 신인인 송유빈의 무심한듯한 보컬도 백지영의 목소리와 잘 어울려 곡 전체의 슬픈 분위기를 배가시켜 줍니다.

이 곡은 자신의 슬픈 감정을 그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주변의 사실을 전달하는데요. 그 쓸쓸한 주변의 상황들은 백지영과 송유빈의 애절한 목소리에 얹어지면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그 상황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내게 슬프다고 하는 것을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슬퍼지고, 이내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이죠.


원래 백지영의 팬이기도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마음을 두드리는 곡.


'새벽 가로수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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