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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미티의 곰보다 못한 나

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by Aprilamb

요세미티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만 가면 된다. 미국이라 생각하면 정말 가까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옆 동네라는 LA도 비행기로 한 시간은 가야 하니 차로 두 시간이라면 왠지 거저 같다. 물론 그렇게 가까워도 이곳에 와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었다. 차를 빌리는 것도 귀찮고, 사실 면허도 없다. (캘리포니아는 거주 시 국제면허증만으로는 운전할 수 없음) 덕분에 요세미티는 맥북 바탕화면으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아는 한국인 가족들이 요세미티에 놀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주었다. 그렇게 염치없이 끼어 같이 가게 된 요세미티.


나는 차를 오래 잘 못 탄다. 어른이 된 이후에는 토를 하진 않지만, 차가 멈출 때까지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는다. 손가락을 코 밑에 대어 살아있는지 확인하려 하는 사람이 있어 가끔 몸을 뒤척여 주긴 하지만, 대체로 물에서 건진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두 시간을 견뎌 요세미티에 도착했는데, 처음에는 사람들 많이 서 있는 곳마다 내려서 구경을 했다. 깎아지를 듯한 절벽과 하늘 끝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폭포들은 움직이는 그림 같았다. 폭포들이 어찌나 큰지 저 멀리 있는 폭포 소리가 뷰포인트까지 들린다. 이 정도 소리면 그 밑에서 득음을 위한 연습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전혀 알아챌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보다 보니 대부분 다 비슷비슷해서 '한라산과 뭐가 달라?' 하게 되었다. IOI 최종 멤버들도 모두 모아 두고 보면 그냥 다 일반인 같아 보이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군데군데 트래킹 코스도 있긴 한데,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도 늘 걷고 있으니 패스.


숙소로 갈까 하고 요세미티 반대편에 위치한 숙소를 찍으니 여섯 시간을 가야 한다고 나온다. 여행지에서 숙소로 가는데 서울에서 부산만큼 가야 하다니 역시 미국이다. 거리상은 한 서너 시간 거리인데 산길이기 때문에 더 오래 걸린다. 요세미티에서 볼 것도 대충 다 본 것 같으니 천천히 가보자면서 일찍 출발했는데, 정말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게다가 티모바일은 요세미티 전역에서 터지지 않아 GPS 가이드를 사용할 수도 없다. 대신 요세미티 입구에서 받은 지도를 보면서 이동하는데, 나 혼자면 분명히 미아가 되었을 것이다. 대관령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길을 하염없이 가고 있는데, 표지판에서 묘한 문구를 만났다.


‘SPEEDING KILLS BEARS’


야생동물이 갑자기 튀어나와 차에 치이는 경우가 종종 있나 보다. 호주에서도 비슷한 표지판을 본 적이 있지만, 캥거루나 사슴이 대상이어서 '아 귀여운 동물들. 정말 천천히 운전해서 꼭 보호하고 말겠어!'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곰은 좀 다르지 않나. 빨리 운전하면 곰을 죽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천천히 운전하면 곰에 내가 죽을 것 같다.

저 표지판이 '곰에게 목숨을 양보하세요.' 같아 보여서 차 안에서 졸지도 않고 '더 빨리 밟아요.' 이렇게 종용했다. 그래봤자 길이 꼬불꼬불해서 빨리 운전할 수도 없다. 곰에게 훨씬 더 유리한 것이다.


네 시간 정도 다른 차도 없는 길을 외롭게 가다 보니 ‘Road Closed’ 라는 표지판과 함께 도로가 막혀있다. 단순하고 강렬한 문장을 대하니, 마치 세상의 끝에 도착한 느낌이다. 이유도 설명도 없다. 전화도 안 되니 어디에 뭘 확인할 수도 없다. 다시 네 시간을 돌아가는 수밖에 없는데 그 정도면 서울에서 중국까지도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근처에서 캠프촌을 발견해서 식사도 잘하고 잠도 잘 자고, 다음 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는 심심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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