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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거리

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by Aprilamb

U2의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이라는 곡이 있다. 이 곡에서의 '이름이 없는 거리'는 바로 이상향이고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도달하고 싶은 도착점이다. 그냥 생각 없이 들으면서 '아 멋진 곳이구나. 나도 가보고 싶은걸' 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그곳에 산다면 좀 난감할지도 모른다. 뭐든 주문은 불가능하니 말이다.


미국에서는 Street의 개념만 잘 알고 있으면 집 주소만으로도 어디쯤인지 머릿속에 그 장소가 떠오른다고 한다. 번지수가 홀수냐 짝수냐에 따라 이쪽에 있는지 길 건너편에 있는지까지도 알 수 있다지만, 나는 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주소를 들어도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 이곳에서 집을 구할 때 주소만 달랑 들고 그 장소를 찾아갔어야 했다. 아무래도 살 집이니 직접 가봐야 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혹시 대범이 극에 달해 '인터넷에 올려진 사진과 정보로 감 잡고 그냥 계약하면 되는 거 아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는 건 한국에서도 소파나 오디오 구매가 한계다.

나는 길을 찾는 것은 정말 원숭이보다 못해서 늘 그 주소를 인터넷 지도에서 찾아 위치를 확인하고 이동했다. 그렇게 했어도 그 주변에 가면 빙글빙글 대체 내가 볼 집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붙어 있는 이 집들 사이에 킹스크로스 역의 9번 홈과 10번 홈 사이처럼 보이지 않는 입구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늘 아주 힘들게 찾거나 결국 못 찾아서 보지 못한 집도 있었으니, 아무래도 거리에 이름까지 없다면 상당히 난처할 것 같다.


Street은 도시를 가로 혹은 세로로 관통하고 있으므로 '그 박물관은 캘리포니아 스트리트에 있어'는 눈곱만큼의 성의도 없는 답변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장소를 이야기할 때는 수학의 좌표를 불러줄 때처럼 교차로의 거리를 모두 알려주는 게 정석이다. '캘리포니아하고 필모어 거리에 있어.' 식인데, 영어로는 'California and Fillmore' 대충 이렇게 불러주니 또 헛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캘리포니아에 있다고? 경기도에 있다면 넌 찾아가겠냐?’


라고 해주고 싶을 정도다. 미국 사람들의 창의력에는 한계가 있는지 주 이름의 거리도 있고, 워싱턴도 두세 개씩 있으며, 도시마다 브로드웨이 Street는 꼭 있다. 대화하다 보면 논리적인 나로서는 가끔 울화통이 치밀 때도 있는데, 지금 거리 이야기를 하는 건지 도시 이야기를 하는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익숙해서 그런지 거리 이야기를 하다가 주 이야기를 해도 '응응'하면서 잘도 알아듣는다. 아무래도 꼭 길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냥 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샌프란시스코에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수십 개의 도시를 가로지르는 길들이 씨줄 날줄처럼 얽혀있지만, 그 길이가 한 블록밖에 안 되는 길도 있다. 그 길이 바로 'Normandie Terrace'인데, 퍼시픽 하이츠 쪽을 걸어가다가 발견하게 되었다.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는 길일 것 같다. 어쩌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짧은 거리'로 유명해져서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이 왔다 갔다 거리면서 '아 이곳이 그곳이래.'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한 시간에 열 명도 안 지나다닐 것 같은 조용한 거리이다. 물론 근처는 모두 집이라 특별히 볼 것도 없고, 햇빛이 쨍하면 숨을 그늘도 없으니 근처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올 일이 없다. 그래도, 프레시디오에서 가까우니 그곳을 방문했다가 길을 잃어 이곳까지 오게 되는 사람은 종종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랬다.


마지막으로 거리 이름 뒤에 붙는 이름들에 대해 조금 알아보자면, 'Street'는 일반적으로 도시에서 빌딩들을 연결하는 거리를 이야기하고, 'avenue'는 북에서 남으로 연결된 길이며, 'boulevard'는 양쪽으로 나무가 심겨 있는 거리, 'drive'는 구불구불한 거리를 이야기한다. 참고로 'terrace'는 거리로 쓰일 때는 별 의미 없다고 한다. '그냥 길'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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