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못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평소 영어를 써야 할 때 어느 정도는 대충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곳에 와서 생활을 하면서 내가 영어를 대해왔던 방식 자체가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 두서없이 이야기해보려 한다.
영어로 써진 문장을 읽을 때마다 모르는 단어가 없는데도 묘하게 의미 해석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 보통 그 문장만을 놓고 단어를 대입해가며 수학 문제 풀듯 접근했었다. 사실 우리나라 말은 그렇게 해도 대충 해석이 되는 게,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문장을 구성하는 방법도 일정하고, 단어의 뜻도 여러 개인 경우가 별로 없고, 생략도 많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어는 조금 다르다.
영어는 우리말과 다르게 생략, 도치, 강조, 미리 정의되지 않은 의미로 단어 사용 등이 너무 일반적이다. 영어에서 뜻이 많은 단어들인 경우 보통 모두 외우게 되는데, 많이 외우면 하나하나 대입해가며 수학처럼 맞는 답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그건 문장을 읽는 게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방식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에 더 가까우니까.
우리말의 단어는 한 뜻과 대부분 1:1로 매치가 되어 그 의미로 쉽게 대치가 가능한 반면에, 영어의 단어는 그 개념 혹은 내포하고 있는 추상적인 느낌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 단어의 느낌, 따뜻한 정도, 방향성 등을 기억하여 자신의 문장에 유연하게 독창적으로 사용하고, 그런 문장을 접하는 사람들은 대충 이런 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게 뭐지? 아 앞에 이야기하던 내용과 이 단어의 느낌을 조합하면 이런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었겠네. 그러면 문장 전체는 이런 느낌이구나
이렇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문장만 봐서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무슨 소린지 잘 모를 수 있다. 이때 그 뜻을 확실히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경험적으로 이런 분위기의 문장을 많이 접해 그 느낌이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추상적으로 설명하면 우리말은 그 문장 자체로 이미 명확하게 설명과 이해가 가능하지만, 영어는 그 문장과 관련된 주변의 여러 정황들이 함께 그 의미를 구성하고 설명해준다고나 할까?
스타벅스에 가면 'Do you want your receipt?'하고 영수증을 받고 싶냐는 문의를 손님에게 하는데,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I'm good'혹은 'ok'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똑같이 대답을 해도 어떤 사람에게는 영수증을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보통 우리는 '네' 혹은 '아니오'로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그것 만으로도 대부분 이 사람이 영수증을 원하는지 아닌지를 확실히 판단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I'm good'이라 이야기를 했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영수증을 받고 싶어 죽겠는 표정을 하고 있는지, 손바닥을 저으며 나는 필요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지 확인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면, Caroline Paul의 'Lost Cat'이라는 소설의 도입부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It looked like those crushed potato chip pieces, the ones you have to tip the bag into your mouth to get to."
처음 보고는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미국인 친구에게 물어보았는데,
'헤이. tip the bag 이 무슨 뜻이야?'
'음. 모르겠는데?'
'과자 봉지를 입에 털어 넣는 그런 느낌이야?'
'음. 그런 건 처음 들어보는데?'
'이 문장 좀 봐줄래?'
'....어... 어 그런 뜻 맞네. 그런데, 처음 들어봐. 문학적 표현인가?'
그렇다고 한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이해하던 단어는 아니더라도 문장을 보면 매직처럼 스윽 그 의미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나보다.
영어는 수학처럼 분석하고 이해하려 하면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제대로 사용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영어를 대하면 생각지도 못하게 갑자기 영어의 달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물론 나는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