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적어도 샌프란시스코는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비가 꽤 자주 왔기 때문에 늘 가방에 우산을 가지고 다녔었다. 사실 우산을 의도적으로 늘 지니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성격상 한 번 가방에 집어넣으면 비가 오지 않는 한은 다시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한번 빼면 다시 집어넣지 않는다. 이건 모든 사람이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젖은 우산을 가방에 다시 집어넣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젖은 우산에서 대충 물기를 제거한 후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나는 깔끔한 성격으로 젖은 물건을 가방에 쓱 집어넣는 사람은 아니므로 그 상태로 들고 다니다가 잃어버리곤 했었다. 그것도 아주 자주 그랬다.
샌프란시스코에 오게 되었을 때 이런저런 물건들을 챙기면서 정말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물건이 바로 우산이었고, 나는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는 날 비를 맞고 호텔로 들어갔었다. 그때가 8월이었으니까 샌프란시스코 사람들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으로, 길을 가는 다른 사람들도 ‘내가 지금 맞고 있는 게 뭐지?’ 이런 표정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이후로는 크게 엄청난 비를 경험한 적은 없는데, 11월이 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여름에는 안개처럼 내리던 비가 우리나라의 장마처럼 온종일 쏟아지기 시작하고, 어떨 때는 해변의 바닷바람까지 더해져 웬만한 우산은 수수깡처럼 꺾어졌다. 어쨌든, 이곳은 우산이 필요한 것이다.
보통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매장을 가도 우산은 사계절 내내 쉽게 볼 수가 있다. 처음에는 ‘캘리포니아에서 무슨 우산. 양산인가?’했지만 모두 우산이었다. 물론 내가 경험했던 것과는 다르게 보통은 겨울에도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곳이라고 하지만, 어느 매장이나 우산은 축하카드와 함께 빠지지 않고 진열되어 있었다.
겨울옷도 마찬가지로 이 날씨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대충 플리스 잠바 하나로도 잘 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겨울이 되면 매장마다 우리나라 겨울까지도 견딜 수 있을 만한 코트나 패딩들이 넘쳐난다.
생각해 보면 우산이라는 게 비가 많이 오면 쓰고, 적게 오면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내린다면, 비 맞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분명히 구매하기는 할 것 같다. 게다가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라면 더 없어지기 쉬우므로 어쩌면 장마가 있는 한국보다도 우산이 더 잘 팔릴지도 모른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기념품점을 가도 우산이 있는데, 그냥 미술관의 로고가 박힌 우산 외에도 전시나 테마가 변경될 때마다 무늬나 그림들을 같이 바뀐 상품들이 지속해서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예뻐서 비가 오지 않는 나라에서 봤더라도 슬쩍 장바구니에 집어넣고 싶어진다.
특히 MoMA(Museum of Modern Art)의 기념품점에는 예쁜 우산들이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으므로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잊지 말고 우산을 펼쳐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과소비는 좋지 않기 때문에 펼쳐만 보고 지나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택시를 탔을 때 운전사에게 비 오는 샌프란시스코는 정말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투덜댔는데, 그분은 진지하게 자긴 여기 10년 이상 살았는데 겨울에 이렇게 비가 온 것은 처음이라고 이야기 했다. 매일 비오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에서 들어서 그런지 ‘뭔소리야?’ 하고 말았지만, 나중에 조사해 보니 정말이었다. 어쨌든 올해도 비는 억수로 오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