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누가 뭐래도 빨래를 할 때이다. 가끔 구질구질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햇살이 쨍하기 때문에 빨래방으로 걸어갈 때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운 좋게 랜덤 플레이에 데이브레이크의 '들었다 놨다' 같은 곡이라도 걸리게 되면 살짝 공중을 걸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리기도 하는데, '샌프란시스코의 날씨 이야긴가? 하루에도 나를 몇 번씩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이러면서 신나게 걸어갈 수 있다.
빨래방에 도착해 빨래들을 세탁기에 던져 넣을 때도 신나고, 그것들이 빙빙 우로 돌았다 좌로 돌았다 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도 재밌다. 책을 들고 갔어도 그렇게 돌아가는 빨래를 쳐다보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솔직히 책 보다 훨씬 더 재미있으니까. 조금 지루해지려 하면 바로 물이 쏟아지기도 하고, '저 속도면 내장도 튀어나오겠는걸?'싶을 정도로 팽팽 돌아가기도 한다. 영화 <도가니>를 보면 이런 세탁기를 폭행의 도구로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평화로운 장소에서 그런 발상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랍다. 그런 사람들은 세탁기를 사용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세탁이 끝난 빨래들을 건조기 속으로 나누어 밀어 넣고는 한 번, 두 번, 세 번 카드를 밀어 넣어 연속으로 세 번 구동시킨다. 넉넉히 뽀송뽀송하게 말려주고 싶으니까. 한 번에 50 센트이기 때문에 시골인심 고봉으로 올리듯 부담 없이 후하게 돌려줄 수 있다. 조금 과하게 건조시켜도 옷의 소매가 세 개가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가끔 양말 한 짝이 사라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건조기는 마치 우주선 같아 보이는데, 특히 도어가 우주선 창과 너무 닮았다. 구동시키면 그 창으로 빨래들이 우주선 속의 산드라 블록처럼 부유하듯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집중해서 보면 셔츠 목부분의 레이블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은 없지만.
건조기가 멈추면 도어를 열어 열풍에 노출되었던 빨래들을 구조해내야 한다. 나는 도어를 열고 팔을 밀어 넣어 건조한 공기 속의 뽀송뽀송한 빨래를 만질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때만큼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양 뒤편으로 순간 이동해 버린 것 같다. 따뜻하지만 뜨겁지 않은 태양의 뒤편에는 앞쪽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땔깜 타는 소리와 그늘에서 빨래 마르는 소리뿐이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면 그대로 빨래 속에 얼굴을 묻고 한잠 자고 싶어 진다.
대충 빨래를 휙휙 끄집어내어 종류별로 나누어 갠 후, 들고 간 이케아 비닐백에 차곡차곡 담는다. 목욕타월은 늘 다 마르지 않으니 제일 밑에 깔고, 셔츠의 단추를 채워 갠 후 그 위에 얹어 올린다. 속옷과 양말은 구석에 슥슥 밀어 넣으면 된다. 잘 집어넣어둔 속옷 더미를 보면 왠지 뿌듯해지는데, 이 정도면 전쟁이 일어나 배급이 충분하지 못하다 해도 얼마 간은 깨끗한 속옷을 갈아입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리가 모두 끝나면 빨래가 가득한 비닐백을 들쳐 메고 다섯 블록 거리에 있는 우리 집을 향해 걸어간다. 운이 계속 좋다면 플레이 버튼을 눌렀을 때 '들었다 놨다'가 다시 한번 나와줄지도 모른다.
내 맘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해
아직 오후 한 시 밖에 안 되었으니 주말이 많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