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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타이들의 성지 Kayo Book Shop

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by Aprilamb
라고 한다면 왠지 서점 주인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지만


샌프란시스코의 포스트 스트리트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이 서점은 창에 라이프지와 여러 다른 미스터리/애로 서적들을 매달아 진열해두고 있어서 금방 눈에 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경 쓰신 금발 아주머니가 무뚝뚝하게 포스에 앉아계시는데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나도 보통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사진을 찍어대는데 왠지 이 곳에서는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 공손히 물어보게 되었다.


'저. 사진을 좀 찍어도 될까요?'

'물론. 그런데, 보기만 하지는 않겠죠?'

('네, 조금 뒤적거리기도 하구요.')


허락을 받긴 했지만 왠지 허락을 받지 못한 것 같은 느낌으로 돌아보게 되었는데, 이 서점은 다른 일반적인 서점과는 콘텐츠가 조금 다르다.

대부분 오래된 서적들인데 수십 년은 된 것 같은 플레이보이지라던지 스와퍼스, 포커스 같은 수위 높은 야한 잡지들, 정말 툭 치면 후드득 부서져 내릴 것 같은 옛날 코믹스, 표지부터 달달한 오래된 야설들이 1층을 가득 메우고 있다.

2층도 있어 살짝 올라가 보니 '미국의 가장 흉측한 범죄 10' 뭐 이런 미스터리/범죄 서적들이 가득하다. 물론 오래된 라이프지나 뉴요커즈 같은 건전한 잡지들도 있고, 아직 휴대전화도 발명되기 전 시대의 공상과학 소설들도 밤하늘의 별처럼 많이 준비되어 있다,


야한 잡지들이야 거기서 거기라 크게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가장 흉측한 범죄 10'이런 책들은 표지만 봐도 내용이 너무너무 궁금해진다. 상당히 낡아 책장을 넘길 때마다 민들레 홀씨나 곰팡이균이 날릴 것만 같아 결국은 사지 못했지만 말이다.


손님이 많지는 않지만 매장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플레이보이 코너나 야설 코너 앞에는 늘 한 두 명의 손님은 서성거리고 있는데, 한참 동안 책을 들었다 놨다 하며 심사숙고하는 모습이 상당히 진지하다. 저 정도로 집중해서 확인하고 고른다면 집에 가서 더 볼 내용이 없을 것 같다. 가끔 어떤 손님은 포스의 아주머니 점원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뭔가 척척 잘도 대답해주고 질문을 한 사람도 만족한 표정으로 책꽂이로 직행하는 것을 보니


'혹시 마릴린 먼로의 나체 전신이 나온 잡지가 있을까요?'

'전신 나체 브로마이드는 00년 0월 플레이보이지 좌측 상단 책꽂이를 보세요. 그리고, '마릴린 먼로 그 의문의 죽음'이라는 미스터리 서적도 2층 계단 올라가자마자 맞은편 책꽂이에 있습니다.'


정도로 스피디하게 대답해주고 있는 것일까?


왠지


'저는 다리를 좋아하는데요...'


라고 불특정 하게 취향만을 이야기해도


'포커스 00년 0월호를 보면 여인의 다리 관한 특집 기사가 총천연색 사진과 함께 실려 있어요. 1층 벽 끝쪽 책꽂이를 보면 다리에 관한 묘사가 뛰어난 '그녀의 뒤태'라는 애로 소설도 있고요.'


하고 척척 이야기해 줄 것만 같다.


시대상을 보려면 잡지만 한 것이 없으니 혹시 과거 미국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깊으신 분들은 한번 방문해서 라이프지를 뒤져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플레이보이지도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라이프지를 보는 척 슬쩍 같이 들여다볼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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