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곡성'을 보고
이 영화는 20세기 폭스사에서 배급을 담당해서 미국에서도 한국과 그리 큰 차이 없는 시기에 개봉을 했습니다.
개봉 당시 평론가들에게 모두 극찬을 받았고, 특히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만점을 주어 화제가 되었죠. 게다가 올해 칸에도 공식 초청작이 되었습니다. 상영 이후 프랑스의 영화평론가인 뱅상 말로자는 곡성을 올해의 영화라고 까지 표현했었는데요.(아직 올해가 많이 남았는데 말이죠. 성격도 급해라..)
이 영화 조금 수상합니다.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자신들이 아는 모든 영화적 요소 및 기법을 화려하게 사용하여 현학적으로 난해한 평론을 펼칠 수 있는 작품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작 일반인인 제가 감상할 때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조금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관객이 600만을 넘어섰다고 하는 겁니다. 그 정도라면 다분히 취향이 대중적인 제게도 장르가 오컬트이던 감독이 데이빗 린치이던 봐도 후회가 없을 가장 명확한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았습니다
우선 영화의 전개 자체는 개인적으로 만점을 주고 싶습니다. 두 시간이 훨씬 넘어가는 러닝타임인데도 중간에 배가 고프다던가 이번 달 방세를 아직 이체 못했다던가 하는 잡생각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고 한 번도 자의로 떼 본 적이 없네요. 특히 빗소리와 사투리 덕에 잘 들리지 않는 대사는 희한하게 더 영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어 주었습니다.(사실 영화가 만족스럽지 않았으면 가장 먼저 까고 싶었던 부분이네요)
영화를 보다 보면 '아 정말 신경 많이 썼구나.'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데, 이게 왜 그런 느낌을 받았냐고 면상에서 물어보면 또 생각이 잘 안 날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시나리오 자체가 상당히 치밀해서 관객들이 명확하게 상황에 대한 프레임웍을 머릿속에 구축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데, 특히 초반부터 등장하는 여러 맥거핀들 덕에 관객들은 끝까지 기본 캐릭터들의 선악구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끝까지 발사되기를 기다리던 체호프의 총구가 결국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발사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게 될 때처럼 허무한 것이 없지만, 이 영화는 오컬트니까요. 논리로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용서가 된다는 것을 감독은 끝까지 얄밉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연기면을 보면 주연이나 단역 모두 정말 인간의 레벨을 넘어선 열연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현장 분위기는 정말 삭막했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의 완성도 높은 연기를 모든 배우가 뿜어낸다는 것은 감독이 미친 채찍질로 몰아갔다는 이야기거든요. 연기는 정말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두 손의 엄지를 모두 들어주고 싶습니다.
특히 아역 김환희(종구의 딸 효진역)의 연기는 '꽃잎'의 이정현을 넘어서는데요. 그 유명한 대사 '뭣이 중헌디?' 부분에서는 누구나 다 똑같이 피부 위로 얼음을 쓸어 올리는 전율을 느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배경 자체가 음침한 시골이고 지속적으로 비가 내리는 데다가 등장인물들도 갑자기 뒹굴어 땅에 처박혀 얼굴이 진흙 투성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뭔가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의 신을 만나보기가 힘든데요. 이게 생각보다 지저분하고 더럽다는 생각보다는 영화의 분위기를 잘 캐리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특히 살인 현장이나 외지인의 집 혹은 굿하는 장소 등은 치밀하게 고증한 오브제들의 배치로 낯설 수 있는 동양적 분위기를 서양 오컬트적 요소와 잘 버무려 외국인들도 쉽게 그 분위기를 공감할 수 있었을겁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어느 한 마을에 외지인이 들어오고 그 이후로 마을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가는데, 경관은 그 원인을 찾고 해결해 나가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사건은 초자연적인 미궁 속에 빠져든다.'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사실 오컬트 영화의 핵심은 그 으스스한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지 줄거리가 논리적으로 설명되어 결국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 이유로 모든 내용들이 명확히 설명되거나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영화가 종료되기 때문에 왠지 샤워 안 하고 잠드는 기분(즐거운 기분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이 되어버릴 수 있지만, 덕분에 영화를 본 이후에 서로 영화의 내용에 대해 토론하거나 복습하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떤 영화 장르라고 해도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부분이 바로 유머라고 생각합니다. 이 것은 사실 비즈니스나 예술활동 혹은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물론 공포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허리가 꺾이면서 미친 듯이 웃게 되는 장면(써놓고 보니 무섭네요)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부드러운 Resting Point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곡성'도 감상 중 계속 긴장으로 온몸이 힘든 상황에서도 가끔씩 터지는 유머 코드들 때문에 러닝타임까지 집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공포영화의 관람 포인트는 무서운 장면에서 살짝살짝 옆을 돌아보며 긴장하고 있는 다른 이들의 귀여운 표정들을 감상하는 것이겠죠?
아직 안 보셨다면 살짝 추천해드리고 싶은 오랜만에 만나보는 오컬트 무비 '곡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