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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이상적인 듀엣이라는 건?

가슴으로 듣는 MBC 듀엣가요제

by Aprilamb
사회의 프레임웍을 진화시키는 것은 테크놀로지와 정치겠지만, 그것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예술일 겁니다. 그리고, 항상 나를 배신하지 않고 최악의 순간에도 곁에 있어줍니다.


그 중 음악은 장르부터 밴드 구성법까지 수많은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는 콘텐츠임에는 틀림없고, 앞으로도 수많은 포맷의 경연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겠죠. 이런 프로그램들은 익숙한 곡만을 무한 반복하며 안일하게 활동했던 가수들에게도 새로운 자극이 되고, 매번 동일한 음악만 들었던 관객들도 보다 퀄리티 높은 음악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비록 포맷은 다르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기존 음악들을 리메이크하여 경연한다는 기본은 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식상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인데요. 오늘 말씀드리려는 ‘MBC 듀엣 가요제’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음악은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아무리 보컬이 깔끔하고 연주가 칼 같다고 하더라도, 완성된 그림을 보며 물감이나 붓을 떠올리지 않듯이, 그 구성 요소들이 전혀 새로운 하나의 콘텐츠로 변화되어 관객의 가슴을 두드리지 않으면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특히 듀엣이라는 건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역시 프로끼리의 조합이라면 노래 안에서 나의 아이덴티티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요. 프로의 세계에서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할 겁니다. 덕분에 듀엣곡이라 해도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의 특색이 고스란히 살아서 서로의 목소리를 밟고 밟히게 되고, 이는 여러 음악적 요소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방해하게 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프로 가수와 아마추어가 같이 팀을 만들어 경쟁하는 프로입니다. 노래를 하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결국은 꿈을 이루지 못한 아마추어들의 이야기에 동화된 가수들은 이들의 꿈을 잠깐이나마 이루어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아마추어들은 이들의 노력에 감동하며 마음을 열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합니다.

욕심이 없이 서로를 받쳐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 이 방송을 한번 보신 분들은 이해하시겠지만 - 정말 기적 같은 시너지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각 참가자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도 노래에 함께 스며들어, 만들어지는 음악들 모두 하나같이 조곤조곤 관객들의 마음에 이야기합니다.


특히 듀엣가요제 7화는 등장했던 가수나 참가자들. 그리고, 그들을 받쳐주는 사연과 관계들의 캐미가 최고조에 달했던 최고의 방송이었다고 생각합니다.(게다가, 우리나라에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누구나 다 가수처럼 노래를 부른다는 건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네요)


첫 숨부터 고급스러웠던 명불허전 SG워너비의 이석훈, 간주 애들립마저도 가슴에 콕콕 꽂혔던 명품 음색 정인, 아이돌이 어떻게 저렇게 진중하게 음을 짚을 수 있나 싶었던 B1A4의 산들, 처음부터 끝까지 맥스 볼륨으로 에너지 넘쳤던 손승연, 남자 노랑머리에 대한 편견을 깨버린 빅스의 켄, 이제는 기성 가수가 되어 버린 노련한 2AM의 창민. 그리고, 그들과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잘 어울렸던 다른 참가자분들까지. '귀가 호강한다'라는 말을 설명 없이 가슴으로 한 번에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더군요. 다른 곡들은 바빠서 들어보기 힘들다 해도 산들과 조선영 씨가 불렀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은 한번 꼭 들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최고의 음악이라는 건 테크닉의 정점이 아닌 삶을 풍요롭고 따듯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 그것이 음악의 가장 중요한 순기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따뜻하게 이야기해주는 프로그램 ‘듀엣가요제’.


저는 매주 찾아보는 프로가 하나 더 늘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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