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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의 최고 난제

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by Aprilamb

처음 미국에 사는 것이라면 힘든 것이 분명히 하나 둘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도착해서 이삼 주가 지나면 대충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살 곳이 마련되고 나면 대부분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뭐'하게 된다. 어차피 살아가야 한다면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나 자신도, 또 컨트롤 불가능한 내 몸의 기관들도 열심히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나도 게으르지만 생각보다 적응은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군대를 가서도 보통 가장 고통스럽다고 하는 훈련소 생활 일주일 차에 '이 정도 레벨로 날마다 제대할 때까지 보낼 수 있다는 게 보장만 된다면 그냥 그래버릴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자대 배치를 받고 난 후에는 그랬다면 정말 큰 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나도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아직도 지속적으로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이발'



먹는 것도 어느 정도 해결 방법이 있고, 옷도 종류는 많으니 잘만 고르면 되고, 날씨도 옷을 껴입던지 얇게 입던지 하면서 조절할 수 있지만 이발은 정말 쉽게 해결이 안 된다. 아마 한국 생활을 하다가 미국에 온 분들은 대부분 동감하리라 생각한다.


처음 와서 일반 로컬 미장원으로 머리를 하러 갔는데, 두껍고 숨이 죽지 않는 내 머리를 앞에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분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안갯속만 걸어도 숨이 푹 죽어버리는 솜털 같은 어메리컨 곱슬머리만을 다뤄왔던 그들에게 내 머리카락은 바둑판 앞의 알파고였던 것이다.


대학 때 친구의 단골 미장원에 같이 머리를 자르러 갔던 적이 있었다. '내가 알아서 잘 잘라줄게'라고 이야기했던 그분은 삼십 분이 넘는 가위질 끝에 '오호호. 귀여워. XX 중학교 애들 같아.'라고 하면서 얼굴에 묻은 머리카락을 털어주었다. 그 중학교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이런 머리를 하고 학교를 다녀야 한다면 할 것은 공부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쨌든 나는 그 이후 삼주 동안 집 밖으로 안 나왔던 것 같다.


그때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 그를 능가할 정도로 이상했던 적은 없었는데, 샌프란시스코의 첫 이발 후 그 기록이 깨지고 만 것이다. 그런 모습이라고 학교 다닐 때처럼 무작정 등교를 안 해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꾹 참고 묵묵히 생활을 하며 머리를 길렀었다. 그리고, 다시 잡초처럼 자란 머리를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을 때에는 재팬타운에 있는 일본 미용실을 가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같은 동양인이니 좀 낫지 않을까 해서였다.


일본인이세요?

아니요. 한국인인데요.

아. 네. 어떻게 해드릴까요?

음. 너무 짧지 않게만 해주세요.

알겠어요. 잘 해볼게요!!


대화를 마치자마자 그분은 대부분의 시간을 숱을 치는 가위만 들고 찹찹 꽤 오랜 시간 동안 다듬었던 기억이다. 다 자르고 나니 분명히 짧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기무라 타쿠야가 아닌데 왜 80년대 일본 사람 같은 머리를 하고 있는 거지? 그냥 일본 사람이라고 했어야 했던 건가. 그날 저녁때 만난 친구가 머리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가난한 중국 사람 같아.


그랬다. 가난에서 벗어나는데 또 삼 주를 기다려야 했다. 이제 남은 선택은 중국인 이발소 밖에는 없는데 한 곳을 찾아 먼저 바깥에서 들여다보니 평균 이발 시간은 3분이고 이발이 끝난 사람들은 모두 그냥 방사능 치료 삼주 차 환자쯤 되어 보였다. 이발기에 5미리 어댑터를 끼우고 고민 없이 이마부터 뒷목까지 죽죽 긁어내리는데, 여기서는 머리를 자르고 돈을 받는다고 해도 절대 자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사람은 역시 머리를 잘라야 하는데 선택지들이 마치 쓰레기통 안에서 점심 메뉴를 선택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잘 자르는 곳도 많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경험해보지 못했고, 이 곳에 머무는 동안 계속 여기저기 다니며 무방비 상태로 머리를 내밀며 돌아가기 직전까지 테스트만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이유로 '이발'은 거주 내내 나의 지속적인 고민거리가 되고 말았는데,


그게 무슨 고민이야?


하는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동포 분도 계시겠지만, 확신하건대 그분 머리도 예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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