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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킥 해야 하는 직업이라니..

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by Aprilamb

몇 주 동안 좀 바빠서 하루를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게 정신이 없다가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그렇다면 조건 반사적으로


청소


이다. 오랜만에 시작한 만큼 비장한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했기 때문에 이소라의 '제발'을 플레이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침대 밑부터 장식장까지 성실하게 계단을 올라가듯, 한 땀 한 땀 뜨개질하듯 진행한다. 배경음악이 이소라의 곡이니 만큼 '대충 해야지'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성실하게 닦으며 음악을 듣다가 거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반복 부분인 '헤어지면 가슴 아플 거라 생각해'부분에서 고개를 갸웃 거리고 말았다. 뭔가 내가 평소 방송이나 라이브에서 익숙하던 애드립이랑 미묘하게 달라서였는데, 보통은 '생각해'부분을 앞 클라이맥스보다 끌어올리면서 밀어주는데 그냥 원래 멜로디로 약간 밋밋하게 끝나버리고 있다. 이것도 물론 나쁘지 않지만 아무래도 조금 더 좋은 버전에 익숙해져 있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스튜디오 녹음 때에는 저 정도에 오케이 사인이 난 것 같고, 자신도 어느 정도 만족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 수백 번 부르면서 곡의 이해도도 높아지고 남의 옷 같던 노래가 마치 수년 입은 잠옷 바지 같아져 마디마디 점점 더 멋지게 부를 수 있게 되었을 테니, 이소라는 요즘 신나게 게임을 하다가도 이 곡이 흘러나오면 저 애드립 부분에서 살짝 집중력이 떨어질 것만 같다.


'아. 저 부분 좀 다시 녹음하고 싶은데..'


할 것 같아. 그러는 순간 '질럿들이 러시해와 어쩔 수 없이 패배' 이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CD로 프레스 되어 수십만 장이 팔려버린 후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냥 꾹 참고 게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나는 가끔 과거에 내가 쓴 글들을 읽어보면서 몇 군데씩 다시 고치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장해버리곤 하는데, 역시 가수나 작가처럼 뭔가 공식적으로 완성을 선포하고 마치 석고상 같은 작품을 내어놓아야 하는 일은 못할 것만 같다. 나중에 인쇄되어 나온 글이나 이미 사람들의 스마트폰에 다운되어 있는 음악에서 뭔가 수정하고 싶은 부분을 발견하게 되면 못 견딜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그런 부분이 아주 많을 것 같다.


완벽하지 못한 사람의 비애인 것 같지만 뭐 인정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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