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 무라카미 하루키
이번 주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술도 많이 마시고, 동시에 처리해야 할 일들도 많았고, 게다가 날씨도 갑자기 싸늘해졌죠. 일을 처리하거나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 미국에서 건너온 짐들이 방에 한가득이라 마음이 계속 불편했고요. 그렇게 어느 곳에서도 몸을 쉬게 하지 못했더니 마치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마라톤을 한 것 같습니다.
금요일 저녁이 되니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 '집에 들어가 버려야지' 하고 역 쪽으로 걸어가다가 잠깐 근처의 서점에 들렀습니다. 에세이 쪽을 훑다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드니!’가 보였어요. 미국에 있을 때 한국 서점 사이트를 뒤지다가 보았던 표지가 온통 노란 책.
출판사 ‘비채’에서 발간한 하루키 책들은 ‘더 스크랩’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쁘죠. 문학동네의 에세이 걸작선도 마찬가지로 예쁘고요. 하지만, 현대문학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조금 노티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키의 사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가 사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시드니!’를 보는 순간 이 책을 사고 싶었던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집어 들고 나오다가 문 옆 책꽂이에서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보고는 '아, 잘못 샀구나' 했었죠. 하지만, 두 권을 사면 늘 둘 다 안 읽게 되니까.
‘시드니!’는 표지가 안자이 미즈마루의 일러스트 같지만 사실은 이우일이라는 삽화가의 작품입니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하루키 얼굴을 보면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읽다 보니 계속 뭔가 어색했는데, 알고 보니 책의 종이가 묘하게 두껍습니다. 덕분에 책장을 넘길 때 자꾸 한 장인 데도 종이 날을 더 벌리려 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이 정도 두께면 대부분의 책은 두장이고, 내 오른손의 검지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계속 뭔가 짐이 덜 정리된 방에 있는 것처럼 불편합니다.
이 책의 초반은 마치 ‘언더그라운드’ 두 번째 권을 읽는 듯한 느낌인데, 개인적으로 그 책을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 첫 번째 권은 재미가 없음 - 술술 읽게 되었습니다. 마라톤 부분은 속도도 빠르고, 긴박감도 느껴져 재미있었지만, 올림픽 전 시드니를 돌아다니는 이야기 부분에서부터 좀 느슨해서 지루해집니다.
저는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집 밖에 나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미국에서 일 년 지낼 때는 '언제 이렇게 외국에 살아보겠어?'하는 마음으로 시간만 나면 샌프란 시내를 돌아다녔었습니다. 막상 다닐 때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다시 돌아와 그때를 생각해보면 가끔 몸서리가 쳐질 때가 있거든요. 대체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이 돌아다녔지? 하면서 이불을 머리까지 푹 덮어쓰게 됩니다.
어쨌든, 그렇게 조금 읽다가 책을 덮고는 천천히 거실로 나와 소파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 걸까?
역시 그 책을 집어 왔어야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