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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에는...

그게 난 슬프다(feat. 유성은) - 윤상

by Aprilamb

뭐든 조금 잘하면 티가 납니다. 그리고, 그것을 티 내고 싶어지는 것도 인지상정이겠죠. 음악도 들어보면 그래요. 뭔가 초보 단계를 착실하게 보낸 후,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아이댄티티나 기술이 생겼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걸 뽐내고 싶어집니다. 그게 느껴져요. 보컬이라면 메인 멜로디보다 기교나 애드립에 신경을 더 쓰게 되고, 기타라면 뭔가 마디 안에 더욱더 많은 음표를 쪼개 넣어 빠르게 짚어 나가려 하기도 하고.

그런 것을 들으면 물론 '와~'하게 되죠. 신기하니까.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내는 걸까?', '코드를 잡는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저 비트로 피킹을 해대는 거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물론 나름대로 테크닉을 감상하는 것도 의미가 있긴 하겠지만, 저는 그렇게 음악을 듣다 보면 마치 봉춘 서커스를 보는 느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비단 음악이나 예술뿐 아니라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절제라고 생각해요.

마디 안에 음표를 욱여넣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역시 마디에서 음표 하나를 빼는 일이니까요.




윤상의 음악을 들으면 악기나 보컬이 따로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음악 그 자체를 내 몸 전체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할까요? 그는 대부분 1인 밴드로 신쓰만을 사용해서 제작을 하므로 어느 악기도 과하지 않은 균형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요. 이 곡은 밴드 레코딩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적 특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처음에는 밴드연주인지 몰랐을 정도예요.

한가람의 베이스도, 최수지의 건반도, 이태욱의 기타도, 김진헌의 드럼도 하나같이 모두 멋지지만, 어느 한 악기도 음악 내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제목에까지 언급된 유성은의 피처링도 신경 쓰지 않으면 '대체 어디를 부른 거지?' 하게 되어버리거든요.

하지만, 역시 자세히 들으면 악기의 배치나 개별 연주 모두 적절하고 품위가 넘칩니다. 특히 베이스 러닝이 너무 맘에 드는데, 그 소리에 집중하게 되면 계속 태핑에 맞춰 고개를 흔들지 않을 수 없어요.(레코딩 중 베이스 연주자가 윤상에게 가장 많은 간섭을 받지 않았을까요?)


개인적으로 유성은을 좋아합니다. 노래의 탄생에서 윤도현 팀의 보컬로 참여해서 불렀던 참회록이 너무 좋았거든요. 물론 이 곡에서는 가장 후반부의 후렴 부분에 코러스처럼 잠깐 등장하긴 하지만, 특유의 음색으로 곡을 세련되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종일관 잔잔하고 담백한 윤상의 보컬은 이제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는 생각이고요.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도입부 첫 코드부터 고급진 윤상의 '그게 난 슬프다'를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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