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어스(2016)
'지니어스'는 천재 작가 토머스 울프와 뉴욕 스크리브너 사의 천재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가 힘을 합하여 명작을 완성하는 내용을 그린 실화에 기반한 영화입니다. 토머스 울프 역에 주드로, 맥스웰 퍼킨스 역에 콜린 퍼스가 열연했는데요. 영화는 대부분 두 배우의 투샷 대화 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명확한 클라이맥스도 없고 볼만한 CG들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계속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두 배우의 명연기와 멋진 대사 때문이었는데요.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피츠제럴드나 헤밍웨이를 발굴했던 맥스웰 퍼킨스가 신인인 토머스 울프와 함께 ‘Of Time and the River(시간과 강에 대하여)’를 함께 퇴고하는 부분입니다. 토머스 울프는 실제로 문장이 길고 묘사가 디테일한 작가여서 궤짝에 담아 보낼 정도로 원고의 양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퍼킨스는 이런 그의 작품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보다 간결한 문장을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영화에서 이 장면이 가장 다이내믹한 부분이라면 좀 실망하실지도 모르겠네요.)
편집 작업은 사실 음악에도, 미술에도, 심지어는 비즈니스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더하는 일은 무언가를 삭제하는 일만큼 고통스럽지 않거든요.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더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곡을 만들 때 악기를 하나 더하거나 음표를 하나 더 그리면 왠지 작품을 더 채우는 듯한 느낌이 들죠. 하지만, 그런 물리적인 복잡함 들은 음악을 듣는 사람이 집중해야 할 고갱이를 흐리게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감상하는 사람은 프로듀싱하는 사람처럼 그 곡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적도 없고, 이해도도 높지 않으며, 심지어는 처음 접하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뒷부분에 퍼킨스의 어린 딸이 그에게 울프가 왜 놀러 오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퍼킨스는
Sometimes just people go away
사람들은 가끔 이유 없이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이야기해줍니다. 살아가면서 모든 일들이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죠. 가끔은 정말 이유 없이 멀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과 친해지기도 합니다. 퍼킨스도 울프 같은 작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 못했을 테고, 상상하지 못했던 때에 그를 잃게 된다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겁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런 것에 관대해지고 무뎌지는 것이며, 퍼킨스는 그의 연륜이 묻어난 가장 지혜로운 대답을 해준 것이죠. 물론 딸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울프의 장례식 이후 그가 병원에서 보낸 편지가 출판사에 도착하는데, 그 편지를 바로 개봉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는 퍼킨스의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네요. 심심한 영화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늘어지는 때 혼자 조용히 보신다면 의외로 괜찮다고 느끼실지도 모릅니다. 아, 니콜 키드먼은 여전히 우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