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이번엔 엘리베이터 이야기.
출근 시간대의 엘리베이터 앞 복도는 늘 우주비행선 발사대 앞처럼 북적거린다. 평소에는 같은 건물에 상주한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이지만 그때 만큼은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동일한 목표를 바라보게 되는데, 출근시간 전에 사무실에 도착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 시간 복도에 사람들이 넘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면 바로 늘 몰려다니는 네 개의 엘리베이터일텐데, 아침마다 대체 어떤 알고리즘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고 싶어질 정도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난처하고 지루한 순간 중 하나인데 그건 - 출근은 해야 하니 - 피할 수도 없다. 물론 반죽이 좋은 사람들은 짧은 시간을 쪼개 인사를 건네며 인맥을 다지기도 하지만, 나 같이 숫기없는 사람은 그냥 아무도 못 본 척 전봇대처럼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우주비행선 발사대 근처의 구경꾼들과는 달리 이 사람들은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면 전원 탑승을 시도하는데, 대부분 서로 밀치거나 무릎으로 옆 사람을 까는 일 없이 무난하게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아무래도 다시 만날 확률이 높기 때문일 거다. 복도에서 기다릴 때도 애매하지만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간 후도 별 다를 바 없는데, 우선 고개만 돌리면 한 뼘 근처에 사람들 머리가 널려 있기 때문에 도무지 시선을 둘 데가 없다. 게다가 출근 시간의 엘리베이터는 완행열차처럼 모든 층에 정차하기 때문에, 목적지인 18층까지 가는 동안 노래 한곡쯤은 거뜬히 들을 수 있다.
내릴 때도 쉽지 않은게, 같이 타고 있던 사람들이 친분은 없더라도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어서 그냥 쓱 내려버리기는 여전히 애매하다. 한두 사람에게만 들리도록 인사를 하는 것은 평등하지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넙죽 인사를 하는 것은 - 내 성격에 - 더욱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이런 것으로 고민하는 것도 짜증나기 때문에, 그냥 애매하게 쓱 내려버린다. 불평등하거나 창피한 것보다는 애매한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야기인데 가끔 아침에 만나면 머리가 늘 젖어 있는 동료가 있다. 분명히 뭔가 이유는 있을 것 같은데 - 미처 머리를 말릴 시간이 없었다든지, 소나기가 내리는데 마침 우산이 없었다든지, 머리가 젖어있는 것을 좋아한다든지 - 며칠 전 우연히 또 일 층에서 만났는데 머리가 뽀송뽀송 말라있었다. '혹시 오늘 머리 안 감았어요?' 하고 물어보고 싶은 것을 꾹 참느라고 혼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 물어보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