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려고 사는 게 아니야, 살려고 이렇게 사는거지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by Aprilamb

아래는 민감한 분이 보신다면 영화의 앝은 스포일러가 존재한다고 판단하실 수도 있지만, 재미를 해칠 정도 -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같은 - 의 내용 소개는 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습니다.




"Scepticism is the first step towards truth."

- Denis Diderot




이 영화는 전형적인 누아르 물입니다. 복잡한 출생의 비밀도 없고, 국가적 위협도 없습니다. 단지 건달 조직과 검사만 있을 뿐이고, 조직 내 갈등과 증거를 잡기 위한 속임수만 있을 뿐이죠. 이 단순한 사건 가운데에 재호(설경구 분)와 현수(임시완 분)가 있습니다.


재호는 힘든 가족사를 딛고 조직에서 성공한 건달이고, 현수는 좀도둑을 하다가 검사에 발탁된 행동 요원입니다. 마약 밀매 조직을 분해하기 위해 검사는 현수를 조직원 재호가 있는 감옥으로 강제 입학(형사가 감옥에 죄수로 위장 잠입하는 일의 은어)시키고, 현수는 그 안에서 재호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결국 둘은 형, 아우하며 퇴소를 하게 되는데...


한국은 유독 누아르 물이 많은 편인데, 이제는 연기파 배우들이라면 꼭 거쳐 가야 하는 장르가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도 모든 조폭물이 어느 정도 이상의 관객을 확보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해당 장르의 작품이 많은 만큼 이제는 차별성을 만들어 내기가 점점 힘들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이 영화는 설경구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견인되고 있는데요. 임시완도 나름 무난하게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김희원의 찌질한 조폭 연기도 극의 긴장감을 풀어주며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줍니다. 허준호도 건달로 깜짝 출연하고 있는데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네요.

감독은 서로의 목적을 위해 속고 속이는 내용을 시간 순서대로 풀지 않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관계된 과거를 교차 편집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영화 ‘아가씨’에서도 차용되었던 스토리텔링 방식이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는데요. 덕분에 단순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모든 상황을 관객이 알 수 없으며, 새로운 주인공 간의 관계 변화는 새로운 반전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필요한 때에 착실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딴 생각을 하면서 본다해도 '아, 뭔소리지?' 하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요. 바보라도 '앗.... 아하~!' 이러면서 보게 될겁니다.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상황은 복잡하게 꼬여가지만, 주인공인 재호와 현수의 신뢰는 한번 이어진 이후로 종반까지 끈끈하게 이어집니다. 누아르의 특징인 끈끈한 우정과 의리의 계보를 그대로 이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의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같이 형, 동생 하던 사이도 아니고 피를 나눈 의형제도 아니지만, 둘은 마치 연인 같은 느낌으로 서로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설경구와 김시완은 이런 미묘한 감정들을 노련하게 잘 연기해내고 있죠.


보는 내내 카메라 워크나 시점 이동도 신경을 꽤 많이 썼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교도소 신 중 설경구가 교도소장에게 담배 판매권의 이전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에 남습니다. 카메라는 파란색 벽 뒤쪽에서 창문을 통해 그 장면을 담고 있는데, 교도소장의 움직임을 따라 원 테이크로 오른쪽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왼쪽으로 따라가는 패닝이 정말 멋졌어요.


'불한당'은 5월 17일 개막하는 칸 국제영화제의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작년 '부산행'도 같은 부분에서 초청을 받아 기립박수를 받았었는데, 개인적으로 '부산행'보다 '불한당'을 훨씬 더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반응이 살짝 더 기대됩니다.



‘왜 이렇게 살아요?’

‘이렇게 살려고 사는 게 아니야. 살려고 이렇게 사는 거지.’


극 중에서 현수의 말에 답했던 재호의 답이 자꾸 떠오르네요. 시간 때우기 용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되는 '불한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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