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에 대하여' - 아리요시 사와코
'악녀에 대하여'는 1978년 3월부터 9월까지 <주간 아사히>에 연재된 아리요시 사와코의 소설로, 2012년 사와지리 에리카 주연의 드라마가 TBS를 통해 만들어지기도 했답니다. 사와지리 에리카라니! 무릎을 탁 치고 말았는데요. 그녀의 행보만 보면 그건 그야말로 완벽한 캐스팅으로, 드라마를 직접 보지 못해서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은 도미노코지 기미코라는 사업의 여왕이 자살을 하게 되고, 한 작가가 이 내용을 글로 쓰기 위해 그녀의 주변 사람 27명과 인터뷰를 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독립적인 인터뷰의 병렬연결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스토리가 기승전결로 흐르며 카타르시스를 전달해주지는 않지만, 매 챕터별 인터뷰가 꽤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어 일단 진입하게 되면 해당 챕터 중간에는 책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꽤 오래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조금 특이한데, 원문이 그런 건지 아니면 양윤옥 님의 번역의 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전후戰後 일본이 배경으로 종종 등장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죠.
작가는 끝까지 주인공 기미코가 악녀惡女인지 선녀善女인지 정확히 밝히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자살인지 아닌지조차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아요. 모든 판단은 독자들이 27개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나름대로 기미코의 성향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해주는 27명의 이야기들이 서로 너무 상반되기 때문이죠. 심지어는 그녀의 혈육인 두 아들조차 서로 상반된 견해를 들려줍니다.
독자들은 그렇게 27명의 다른 의견을 대하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기미코는 아름답고 젊은 모습을 이용해 온화한 성품인 척하면서 필요에 따라 사람들을 이중인격자처럼 대했던 악녀라고 말이죠. 책 제목도 '악녀에 대하여'이니 표지를 대했던 선입견도 무시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판단합니다. 이 책에서 인터뷰에 응했던 27명도 마찬가지겠죠. 물론 복기된 27명의 기억을 객관적으로 조합해보면 그녀가 천사라고만은 이야기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며 인터뷰이의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재구성되는 그녀가 정말 객관적인 그녀의 모습일까요?
종반이 되어도 작가는 기미코가 악녀인지 아닌지 혹은 자살인지 아닌지를 밝힐 수 있도록 정황을 좁혀가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끝까지 상반된 인터뷰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어요.
결국 키미코가 악녀라도 선녀라 생각하는 사람은 존재하고, 선녀라도 분명히 악녀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것. 가설을 어떻게 세우든지 실제 27개의 인터뷰 중 일부는 분명히 그 가설과 반하고 있다는 것. 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왠지 기미코가 착하고 여린 여자였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하네요.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과 비슷한 구성이라 그 책을 재미있게 읽으셨던 분이라면 추천해드리고 싶은, '악녀에 대하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