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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광주까지 30km

진짜 '택시운전사' 리뷰에요.

by Aprilamb

영화의 줄거리나 심각한 스포일러는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무거운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제가 무거우니까.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없는 소재라는 건 정치 문외한인 나도 잘 알고 있었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가 관객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예상하고 있었을 거에요. 듣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도입부부터 실제 이야기의 중심까지 진행되기 까지가 지루할 수도 있고, 내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이야기가 언제쯤 스크린에 재현될 것인지 계속 기다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달랐어요. 천천히 가도 좋았습니다. 수준 높게 고증된 그 시절의 모습 속에서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천진난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거든요. 그 사건이 발생되고 있는 순간에도 그것을 접할 수 없었던 서울 사람들도, 실제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속에 놓여있던 광주 사람들도, 모두 순박한 우리네 이웃이라는 것을 영화는 조곤조곤 이야기해주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 하나 하나와 정이 들어버린 나는 후반부의 사건 속에서 더욱더 가슴 아팠습니다. 죽기 직전 갑자기 유창해진 류준열의 영어 말하기 능력에 '이건 좀..' 할 수도 있었지만, 그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는 송강호의 부탁에 못 이겨 순진하게 기타 치는 흉내를 내던 모습이 생각나서 그럴 수 없었어요.


이럴 수가 있나요?


수없이 들어 잘 알고 있고 익숙한 이야기였는데도 스크린에 펼쳐지는 모습들이 왜 그렇게 생경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자동차 추격전은 액션 영화에서 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신나는 장면이긴 하지만, 왜 저들이 같이 저 스크린 안에서 서로 치고받으며 추격전을 해야 했던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죠. 저런 일이 정말 이 땅에서 일어났었던 거에요.




송강호는 믿고 보는 몇 안 되는 남자 배우 중의 하나로, 개인적으로 어떤 시나리오라도 읽으며 느끼는 그 이상을 늘 보여주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현명하지는 않지만, 인간적이면서도 유머스러운 캐릭터에 특화되었다고 할까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영화의 이 캐릭터입니다. 덕분에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의 초중반부가 가뿐하게 캐리 되고 있고, 감독도 그 정도면 충분했을 것 같아요. 어차피 후반부는 어떤 상황의 어떤 관객이라도 끝까지 몰입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니까.


...


무거운 발걸음으로 영화관을 나오면서 이 사건을 아는 사람도, 이 사건을 잘 모르는 사람도, 모두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희생되셨던 분들, 그로 인해 고통을 받으셨던 분들, 그리고 그런 사건이 일어났던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 이 영화로 위로 받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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