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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노래 만드는 과정을 알아? 시즌 2

KBS 추석 특집: 건반 위의 하이에나

by Aprilamb

작년 4월에 tvN에서 '노래의 탄생'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였었죠. 그 방송은 멜로디만 있는 가이드 음원이 주어지면 프로듀서들이 쟁쟁한 세션들을 실시간으로 선택하여 45분 만에 뚝딱 마법처럼 음악을 만들어내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었는데, 테스트 런 이후 6개월 만에 정규방송 편성이 되어 8회까지 시즌1이 진행되었습니다. 원래는 10회를 방송하기로 했었으나 8회에서 조기 종영되었는데, 내내 시청률이 1%를 넘은 적이 없었다고 하네요.


파일럿 방송부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조기 종영이 많이 아쉬웠는데, 종편이라고 해도 요즘은 시청률이 높은 프로들이 많기 때문에 시청률이 낮았던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쟁쟁한 뮤지션을 모아놓고 소품처럼 사용했던 부분이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도 그중 하나겠죠? 만약 프로듀서에게 선택이 되지 못하면 두 시간이고 열 시간이고 녹화가 진행되는 동안 시급 받는 방청객처럼 자리를 지켜야 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45분 만에 뚝딱이라니 그건 좀 너무했죠. 프로듀서들이 미리 음악을 받아 장르나 드래프트 혹은 편곡들을 미리 준비해오지 않는다면 제한 시간 안에 음악을 찍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거예요. 사실 그래도 놀랍지만...


KBS에서 이번 추석에 준비한 '건반 위의 하이에나'는 '노래의 탄생'류의 음악 예능 방송으로, 작곡가들이 일정 시간 안에 신곡을 만들어 음원차트에서 대결하는 구조입니다. '노래의 탄생'처럼 시간 제약을 두지는 않아 긴박감과 긴장은 덜하지만, 장르나 프로듀서의 세대를 달리하여 전혀 다른 음악 생산 방식을 아기자기하게 경험할 수 있었어요.


이번에는 올디스 정재형, 입으로 작업하는 윤종신, 비트의 귀재 그레이, 헝그리 프로듀서 후이 이렇게 네 명이 자신만의 페이스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SBS의 '미운 우리 새끼'나 MBC의 '나 혼자 산다'처럼 각 주인공의 스토리를 교차 편집하여 보여주는 방식으로, 제가 좋아하는 분야라서 그런지 방송 내내 눈을 떼지 못하고 보았습니다.


95년 베이시스로 데뷔했던 피아노 전공인 정재형은 음악 이론으로는 이들 중 가장 앞서 있을 겁니다.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연필로 음표를 꾹꾹 눌러 그려가며 작곡을 했는데, 아마 베토벤도 저렇게 작곡을 했겠죠? (이 분 머리 좀 깎아야겠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정재형은 피아노 앞에 있을 때만 좋아합니다.)


015B의 객원으로 데뷔했던 윤종신은 악기를 다루지 못하죠. 대신 자신이 생각해낸 멜로디를 받아내고 세련되게 다듬어줄 수 있는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을 합니다. 유희열, 하림, 조정치 등이 그의 음악 노예로 활동했었는데요. 이번에는 규현의 ‘블라블라’를 작곡한 장화성 작곡가와 함께 주고받으며 곡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윤종신은 제가 아는 한 정말 가장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뮤지션으로, 마치 공장에서 벽돌 찍듯이 한 번에 여러 개의 곡들을 동시에 어레인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레이의 경우는 위의 두 작곡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패턴으로 곡 작업을 합니다. 힙합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메인 비트인데요. 그레이는 먼저 드럼 패드로 비트를 여러 개 찍고, 같이 작업할 래퍼들과 그중 가장 귀에 들어오는 것을 선택합니다. 비트를 고르고 나면 그는 훅(Hook)과 브리지(Bridge) 작업을 하고, 다른 래퍼들은 벌스(Verse)를 위한 가사를 쓰네요. 이번 작업은 로꼬, 슬리피, 후디와 함께 했는데 후디의 음색이 너무 좋습니다! (병약해 보이는 슬리피도 비트를 고를 때에는 하이에나로 변하네요.)


이번 방송으로 처음 알게 된 후이는 펜타곤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리더라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업을 하는데요. 작업용 컴퓨터를 부팅하는데 30분 이상 걸리는 것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 정도라면 분명히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데, 하드디스크를 SSD로 교체하고 윈도의 재설치를 권하고 싶더라고요. (전화번호를 몰라서 그러지는 못했음) 음악은 약간 아이돌스러운 음악이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4분 남짓 듣고 흘렸던 곡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그 안에 차곡차곡 쌓인 스토리를 알게 되고, 이를 또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 소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문화소비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 보다도 집중하는 프로들의 모습을 보는 건 늘 신기하고 즐겁습니다.


tvN의 '노래의 탄생'처럼 ‘건반 위의 하이에나’가 꼭 정규방송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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