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이번 주는 정말 추웠다. 사실 겨울이 그렇듯 춥지 않은 날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지만, 여기 저기서 ‘영하 15도’라니까 왠지 더 추운 것만 같다. 어제 집을 나설 때 아침 뉴스의 날씨 코너에서
‘오늘은 영하 15도로 올해 중 가장 추운 날씨입니다’
라고 했을 때 사실 조금 의심했었다. 분명히 얼마 전에 영하 16도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단단히 무장하게 하고 나가게 하려는 선의의 거짓말이었을까? 어쩌면, 별다른 소식 거리가 없던 날에 뉴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극단적인 조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 그건 작년이었지?’
하고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2018년으로 이제 새해가 시작된 지 이주차니까. 분명히 영하 16도는 지난해 이야기인 것이다. 신경 쓰지 않아도 시간은 성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 등 뒤에서 멀어지고 있다.
오늘도 분명히 예보 상으로는 추운 날의 연장선이었지만 아침에 집을 나설 때 하늘하늘 내리는 눈에 정신이 팔려 정작 날씨가 춥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펑펑 내리는 눈도 좋지만, 나는 이렇게 바람 한번 불면 훅 다시 하늘 위로 날려 올라가는 정도로 내리는 눈을 더 좋아한다. 바닥에 쌓이는 눈은, 음. 몸무게를 실어 꾹 누르면 바로 선명하게 발자국이 생길 정도의 깊이면 베스트다. 그 정도면 아침에 누구보다도 먼저 눈길을 걸으며 만든 발자국이 선명하게 보여서 뿌듯하기도 하고, 깊을 때 보다는 덜 미끄러져서 길을 걷는 것도 크게 불편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집 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토푸비츠의 ‘水星(Suisei)’을 들었다. 한때 마음 속으로 욕하던 단순 비트의 무한 반복인 베이퍼웨이브 곡을 내가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아무 생각도 없거나 하기도 싫을 때 듣고 있으면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그 곡의 비트에 맞춰 걸으니 눈밭에도 그 음악에 맞춰 발자국이 생긴다.
기분이 좋아져서 천천히 걸으며 뉴스를 살펴보고 있는데 ‘SNS에 손가락으로 브이하고 사진 찍어 올리지 마세요’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고퀄리티의 폰카가 지문까지 선명하게 찍어내기 때문에 생체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해커 - 라기 보다는 도둑놈 - 가 그 지문 정보를 활용해서 우리 집 도어락을 풀고 현관문을 연다니 생각만 해도 짜증이 솟구친다.
누군가 지금 평화롭게 눈 위를 걸었던 내 발자국을 스캔해서는 그 밑창 정보로 ‘당신의 낡은 신발을 벗어 던지세요. 여기 바로 구매하실 수 있는 280 사이즈의 멋진 신발 리스트를 보내드립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같은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아파트 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발자국을 찍으러 오는 놈의 옆구리에 니킥을 박아넣고 싶어진다.
어쨌든 지문 언락 기능이 있는 도어락은 사진 찍을 때 ‘브이’가 더 이상 하고싶지 않을 때 사는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