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일 년 반 만에 다시 온 샌프란시스코는 언뜻 보기에는 떠나기 직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지저분한 거리, 낡은 건물, 넘치는 노숙자 그리고, 지긋지긋하게 추운 밤까지도. 모든 최첨단 서비스들이 시작되고 관련 스타트업들이 넘쳐나는 곳이지만, 막상 거리를 걷다 보면 도무지 그런 도시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는 것도 참 특이하다.
하지만 천천히 다녀보니 ‘다른 그림 찾기’ 느낌으로 소소하게 달라진 점이 있긴 했는데, 대부분 크게 관심이 없을 만한 일 년 반 만의 샌프란시스코 업데이트를 해보자면,
Geary - Masonic Ave에 위치한 베스트바이의 영업 중지
샌프란시스코는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압도적으로 거대한 월마트나 이케아는 아예 입점하지도 못했고, 그보다는 조금 작다고 할 수 있는 베스트바이 같은 매장은 중심가를 벗어난 도시 변두리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생활할 때 고향 생각에 마음이 울적해지면 무작정 버스를 타고 - 혹은 걸어서 - 베스트바이로 가서는 여러 가전제품이나 블루레이들을 구경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곤 했는데, 그런 마음의 고향, 베스트바이가 문을 닫다니. 물론 서킷 시티나 라디오샥처럼 파산한 것은 아니고, 자주 가던 Geary의 매장만 정리된 것이지만 왠지 아쉽다. 이제 다시는 Geary에서 베스트바이 홈시어터관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 쉴 수 없는 것이다. 꼭 그곳에서 쉬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Muni(샌프란시스코의 버스)의 승차권 발급 자동화
일 년 전만 해도 버스에 현금 탑승을 하면 운전사분이 영업시간이 인쇄된 탑승권 시트를 탑승 시간 부분에 맞춰 자 같은 것을 대고 ‘북~’ 찢어 줬는데, 이제는 새로 설치된 발권기에 현금을 넣으면 탑승 시간과 사용 가능 시간이 인쇄된 탑승권이 자동으로 인쇄되어 나온다. 탑승권이 인쇄되어 나오는 게 분명히 놀라운 발전은 아닌데, 뭔가 늘 읍내 느낌인 샌프란시스코라 놀라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지폐로 지급하면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 것은 변함이 없다.
요금인 $2.75를 잔돈까지 제대로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전사 앞에서 천천히 동전 하나하나 세어가면서 요금을 준비한다. 요금 수납이 끝날 때까지 탑승객들은 느긋하게 창밖을 구경하는데, 가끔은 자전거를 버스 앞 유리 아래쪽 거치대에 올리거나 휠체어를 들기 위한 기중기를 구동하느라 정차 시간이 상상 이상으로 길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평화롭죠? 하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50분을 기다려본 경험상 시간을 지켜야 하는 약속이 있다면 우버 사용을 권하고 싶다.
전기구동 탈 것들의 범람
내가 있을 때도 샤오미 나인봇이나 비슷한 부류의 탈 것들이 꽤 유행하는 중이었지만, 모두 개인 소유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Ford goBike(전기 자전거)의 거치 스테이션이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라임 바이크나 라임 스쿠터 같은 소셜 공유 탈것들이 길 여기저기에 놓여 있다. 덕분에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는 이미 자차, 택시, 전차, 버스, 우버/리프트, 자전거, 전기 자전거, 전기 스쿠터들로 군웅할거가 시작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였다면 전국시대를 맞이했겠지만, 평화로운 샌프란시스코는 모든 서비스가 상생하며 봉건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깊이 들여다보면 서로 물어뜯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변화들은 그러든지 말든지 하고 말았지만, 전기 자전거 서비스는 왠지 아쉬웠다. 이곳에 머물 때 그런 서비스가 있었다면 주말에 오션뷰나 발보아 파크까지도 신나게 달려갈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샌프란시스코는 공기도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