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스타벅스에서 올해는 여름에도 e-프리퀀시 행사를 진행한다고 했다. 겨울의 다이어리 증정 이벤트는 연례행사처럼 경건하게 임하고 있었지만, 여름에도 비슷한 행사를 하는 줄은 몰랐다. 이전에도 계속했었든, 올해 처음이든, 어차피 커피는 대부분 스타벅스에서 마시기 때문에 이번에도 큰 문제없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상품은 바로 ‘야외용 매트’였다.
사실 누구나 집구석 어딘가에 은색으로 반짝이는 매트 하나 쯤은 있기 마련이다. 물론 있다 해도 일 년에 한 두 번쯤 쓰면 많이 사용했다 할만한 물건. 하지만, 스타벅스 매장 앞 포스에 놓아둔 행사 팻말 속 사진을 보니 생각보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워 보였는데, 가방에 쏙 넣어두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지날 때 잠깐 길옆의 잔디에 깔고 앉아 책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한강 변에 앉아 책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러다가 어제 드디어 15번째 커피를 주문했고, 앱을 확인 후 매트와 교환하기 위해 당당하게 포스 앞에 서게 되었다. 매트는 ‘블루’와 ‘옐로우’ 두 가지가 있었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처음에는 ‘매트가 거기서 거기지 뭐. 깔고 앉는 건데 디자인이 뭐 중요한가?’ 하는 생각도 있고, 둘 다 비슷해 보여서 딱히 어떤 게 더 갖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쨋든 선택은 해야 하니, 다시 한번 찬찬히 사진을 들여다볼까?
‘블루’는 하늘색 바탕에 아이스 음료와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가장자리는 빨간색으로 마감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시원한 느낌으로 어느 정도 매트의 정석 디자인을 따르고 있었다. 반면에 ‘옐로우’는 만화의 컷처럼 여러 개의 직사각형으로 나뉘어 있고, 칸마다 독특한 배경색과 스토리를 담고 있다. 조잡하다면 조잡하고, 특이하다면 또 특이한 디자인이다. ’블루’가 무난한 것 같긴 했지만 결국 ’옐로우’를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하기 전까지 계속 고민을 했다고 생각한다. 역시 고만고만 했기 때문이다.
‘옐로우로 주세요.’
나는 말했고,
‘아 죄송해요. 고객님. 저희 매장에는 블루 밖에 남아 있지 않아요.’
하고 점원은 세상 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길 건너편에 다른 매장이 있으니 그쪽으로 가서 받으면 될 것 같아서 괜찮다고 이야기하고는 매장을 나왔다. 천천히 길을 건너 맞은편의 매장에 들어가 똑같이 주문했지만, 대답은 같았다.
‘고객님. 옐로우는 다 소진되었어요.’
연속으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역시 옐로우였어!’ 하고 말았다. ‘블루’의 하늘색 바탕은 끝도 없이 촌스러워 보이니까. 반면에 ‘옐로우’의 노랑과 빨강의 대비는 마치 몬드리안의 추상화처럼 강렬했다. 하늘에서 보면 잔디에 깔려 있는 옐로우 매트는 녹색 벽 위에 걸려 있는 예술작품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블루는 화장실 벽에 붙어 있는 신문지처럼 보이겠지? 지저분 해.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는 주변 스타벅스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 어떻게 해요. 옐로우는 없고, 블루만 있거든요.’
‘죄송해요. 옐로우는 나오자마자 모두 나갔거든요. 블루로 드릴까요?’
‘잠시만요. 우리 옐로우는 없지? 고객님. 블루 밖에 없네요.’
‘어떤 거로 드릴까요? 네 잠시만요. 창고에 다녀올게요. 아. 고객님....’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모두 없는 거지? 끝도 없이 이어 늘어서 있는 스타벅스 매장에도 놀랐지만, 그 매장마다 하나같이 ‘옐로우’가 없다는 것도 놀라웠다. 다이어리는 늘 내가 원하는 것을 쉽게 받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옐로우’의 노란색이 금딱지인 것도 아닐 텐데 이렇게 모든 매장에서 동이 나버리다니,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렇게 다음 매장을 찾기 위해 지도를 열었는데, 근처에 ‘황학동 주방 거리’라는 곳이 보였다. 그냥 매트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뭔가 익숙한 - 하지만 가본 적 없는 - 황학동이나 구경 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자전거를 꺾었는데, 건너편 이마트 건물에 스타벅스가 살짝 보인다. 15킬로가 넘게 찾아다녔는데, 코 앞에 있는 스타벅스를 들르지 않는 건 조금 아쉽잖아?
건널목을 건너와서는 자전거를 건물 앞에 세우고 스타벅스 황학 캐슬점으로 들어가려는데, 이건 대체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건물 바깥에는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없고, 건물 안쪽을 들어가 봐도 딱히 입구라고 생각될 만한 문이 없었다.
어떻게 돌아돌아 들어가니 코딱지만 한 입구를 겨우 찾을 수 있었는데, 왠지 느낌이 좋았다. 아무래도 이곳은 고객이 입구를 찾아 들어오기 쉬운 스타벅스가 아닌 것이다. 옐로우 매트를 받으러 왔다가 입구를 찾지 못해 발걸음을 돌린 고객들이 아마 몰라도 몇 명은 있었겠지. 하지만, 난 당당히 이렇게 포스 앞에 서 있다.
‘저 혹시 매트 있나요?’
‘네. 옐로우 밖에 없는데 괜찮으세요? 봉투에 넣어 드릴까요?’
아.. 정말..요? 하지만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해달라고 했고, 점원은 주섬주섬 봉투에 옐로우 매트를 담아 주었다. 그런데,
‘와. 매트 되게 크네요?’
엄청나게 컸다. 사진의 매트는 작은 파우치에 쏙 들어가는 일인용 같았는데, 실제 매트는 그 큰 종이봉투가 맞춤옷처럼 꼭 맞을 정도로 거대했다. 어쨌든 가방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
‘한강에서 독서할 일은 없겠네.’
그래봤자 집에서도 잘 안 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