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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Jun 09. 2018

집 앞에서 기다리는 감성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그런 게 있다.


누군가의 집 앞에서 끝도 없이 기다리고 싶어 지는 경우


물론 꿔준 돈을 받기 위한 잠복도 있고,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을 준 그놈의 옆구리에 니킥을 찔러 넣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실수를 사과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그중 백미는 그녀가 너무 보고 싶어 무작정 찾아가는 경우가 아닐까?


....


대학 때 즈음은 늘 할 일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처럼 강제로 등교할 필요도 없는데다가 목표의식을 가지고 집중할만한 것도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는 넘치는 시간들이 거기 있었다. 건성으로 기타를 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후배들에게 시덥잖은 농담을 해봤자 시간은 하와이의 마우이처럼 느리게 갔다. 그때는 이정도 속도로 평생 살아가게 되는 거겠구나 했었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속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일 서로 얼굴을 보며 지루하다고 떠들어댔었다. 물론 끼리끼리 모여다니는 것이었겠지만...


가끔은 할 일도 없고, 술 마실 친구도 마땅치 않고, 딱히 TV를 보고 싶지도 않을 때가 있다. 그렇게 멍하니 방구석에 앉아 아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관계 점수를 매기다 보면, 세상에 점수가 높은 사람이 너무 없어 놀라게 될테지. 그러다 보면 요즘 만나고 있는 그녀가 보고 싶다는 감정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그게 바로 지금이라는 간절함이 간헐천처럼 솟구쳐 오를지도 모른다.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그런 감정을 신피질 아래쪽에 묻은 채 별로 관심 없었던 예능프로에 눈을 돌리겠지만, 집 밖으로 나서는 것이 가려운 콧등을 긁는 것만큼 쉬운 행동파들이라면


'내가 담배꽁초 보관용 페트병처럼 왜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있지?'


하면서 용수철처럼 튀어 현관을 나설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점점 그녀의 집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할 일이 많았던 것처럼, 친구가 한잔 하자고 연락을 해왔는데 뿌리쳤던 것처럼, 미스 함무라비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 쓰러질 뻔했던 것처럼 마인드 컨트롤하며, 구질구질했던 일상을 영화 속 한 장면으로 포장해 버리는 것이다.  


.....


(목소리가 음정/박자 정확한 '역사 읽어주는 남자' 설민석과 비슷한, 팬분들께는 죄송) 닐로의 '지나오다'의 가사를 들어보면 주인공이 그녀의 집 앞에 서 있다. 상당히 지질하고 소심한 그는 이별을 통보받았지만, 그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고 상황을 되돌릴 수 있을까 하고 왔다가는 맘속으로 투정만 부리다 돌아서는 것이다.

원래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잘 안 듣는 편인데, 생각보다 노래가 가수를 극한직업으로 만드는 곡이길래 유심히 듣다가 가사까지 듣게 되었다. 이 곡의 주인공은 앞에서 상상했던 '그녀의 집 앞으로' 와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그녀의 집으로 가는 걸음걸음이 고통스러웠을 것만 같다. 이런 찌질 감성의 원조라면 역시 쿨의 '너의 집 앞에서' 아닌가? 대범한 것처럼 떠들고 있긴 하지만, 가사 속의 그도 그녀에게 차인 상태다.


언제든 누군가 필요하다 느끼면

그냥 창문을 열어 널 향해 두 팔 벌린

한 사람이 여기 널 기다리고 있어


무슨 나무도 아니고, 앞으로 계속 쭉 창문 밖에서 노숙하겠다는 이야기라면 조금 소름 돋을 것도 같다. 하지만 역시 당사자들은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일 테니, 닐로의 '지나오다'와 쿨의 '너의 집 앞에서'의 주인공 모두 상황이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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