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사계절 큰 변화 없이 따뜻하고 온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서 있으면 늘 익스트림했다. 계절별 온도 차이는 크지 않지만 하루 내의 일교차가 커서 하루하루를 사계절처럼 견뎌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얇은 점퍼나 카디건을 챙겼다. 아침에는 살짝 추우니까 걸쳐주고, 건물 안에서도 에어컨을 세게 틀면 입어준다. 낮에 밖을 걸을 때에는 허리에 묶거나 벗어 들고, 그늘 쪽에 앉아있게 되면 무릎을 덮는다. 그리고, 혹시라도 밤늦게 돌아가게 되면 트렌치코트나 점퍼의 단추까지 잠그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곳에도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에 카디건을 입으면 저녁 집 현관을 들어설 때까지 벗지 않거나, 날씨가 싸늘해지던 말던 티셔츠만으로 집을 나서는 사람도 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으니까. 경우의 수는 같지만 비율이 다를 뿐이다.
서울은 여름이 되면 아침부터 밤까지 일관되게 덥기 때문에 티셔츠 하나만으로도 잘 견딜 수 있지만, 봄, 가을은 샌프란시스코와 마찬가지로 한 가지 옷으로 하루를 버티기에는 뭔가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곳에 와서는 다시 예전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입고 나오는 옷을 고수하는 방향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다른 일들도 바쁘고 정신없는데 옷까지 입었다가 벗었다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서였을까? 그러다가 얼마 전에 아침에 날씨가 조금 싸늘해서 얇은 점퍼를 입고 나오게 되었다. 저녁에 집으로 가기 위해 건물을 나설 때는 꽤 따뜻해서 조금 덥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대로 점퍼를 입고 자전거에 올랐다.
한강을 달리다 보니 점점 몸에 열이 올랐다. 한번 자전거에 올라타면 잠깐 서는 것도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어서, 전화가 오던 메시지가 오던 아랑곳하지 않고 페달을 밟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왜인지 모르게 자전거를 잠깐 세우고, 점퍼를 벗어 가방에 묶고는 다시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지구에서 플레이아데스로 가는 트랜싯을 달리면 이런 기분일까? E.T의 손짓에 하늘로 날아오르던 자전거에서 엘리엇이 느꼈을 자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람은 끊임없이 다가와서는 자전거 뒤쪽으로 흩어지고, 나무들은 자전거 속도에 맞춰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강물은 내가 어떤 속도로 달리든 인자한 어머니처럼 보조를 맞춰 함께 걸어 준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
...........
물론 그 이후에도 자전거로 한강을 자주 달렸지만 약간은 더워도, 살짝 추워도, 그냥 자전거에 올랐을 때의 모습으로 목적지까지 달린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뭐 누구나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선택만을 하게 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자주 접하게 되면 그 다른 세상도 이 세상처럼 평범해질 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끔은 내 날개 밑느로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고 싶어질테니, 적절하게 옷을 겹쳐 입거나 손에 드는 작은 수고만으로도 주변은 다이내믹하게 달라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