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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Jun 16. 2018

아직 주말이 하루 반나절 남은 오후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보통 늘 잠드는 시간에 자게 되면 대부분 일정한 시간에 깨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새벽 한 시쯤 잠들어서 오전 여섯 시 반쯤 일어나는 것. 일단 일어나게 되면 정신을 아직 덜 차린 상태라도 일련의 프로세스대로 프로그래밍이 된 기계처럼 움직이게 된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샤워를 하고 거실의 텔레비전 소리를 좀 더 키운 후 머리를 말린다. 매일 아침 마치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처럼 아무런 의심 없이 성실하게 이행하게 되는데,

‘이런 제기랄. 내가 왜 머리를 말려야 하지?’

같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수문장 교대의식 때 누군가가 ‘내가 여기서 왜, 오와 열을 맞춰 이동하고 있는 거지?’하고는 깃발을 집어 던진 후 대각선으로 뛰어 도망쳤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다.
혹시 그런 장면을 보게 된다면, 머리를 늘 말리는 나는 ‘와 재밌고 신선해!’라고 하기보다는, ‘어머 저걸 어쩐다. 중요한 의식이 개판이 됐어!’ 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게 될 것만 같다.

그런데, 가끔은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들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아직 잘 때도 되지 않았는데 샤워한 후 잠깐 누웠다가 잠들어 버린다거나, 대낮의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커튼을 치고는 지루한 음악을 듣다가 깜빡 존다든가 하는 경우. 그렇게 잠들었다가 일어나게 되면 확실히 평소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일어나서 잠자리를 정리할 상황은 아닌데…?’

아직 잠이 덜 깨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도 확실하게 인지하게 된다. 저런 상황이면 분명히 오전 여섯 시 반은 아닌 것이다. 그런 상태라면 우선 눈을 뜨기 전에 귀를 열어 주변의 정보를 수집한다. 천천히 하지만, 신중하게.

대로변의 자동차 움직이는 소리가 입체적으로 들리면 낮일 확률이 높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혹은 천정에서 쿵쿵 걷는 소리가 들리면 초저녁, 텔레비전 소리가 들린다면 오후 열 시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면 한밤중일 테지.
동시에 희미한 뇌 속을 헤집어 어떤 상태에서 잠이 든 것인지, 오늘은 평일인지 주말인지, 외부의 영향으로 잠에서 깬 것인지 아니면, 잠에 지쳐 스스로 일어나게 된 건지, 과거 경험에 비추어 해당 상태에서 잠이 들면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잠을 자게 되는지 등 하나하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며 논리적 상황파악을 시도한다. 그 두 정보를 조합하면 어느 정도 종합적인 판단을 해낼 수 있는데,

‘간단하게 점심 먹고는 드라마 보다가 잠들었던 거라고. 지금은 아직 주말 낮이야. 안심해.’
‘집에 와서는 씻기 전에 소파에 누웠다가 잠들었지. 길게 잡아도 밤 한 시 전이네.’
‘미우새 보다가 자버렸구나. 월요일 새벽 세 시 쯤인 것 같은데? 우울하다.’

이렇게. 하지만, 가끔은

‘분명히 아직 오전인데, 내가 왜 지금 자다가 일어난 거지?’  

하며 상황판단을 못할 때도 있다는 거. 치매가 아니길 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은 그것을 측정할 때 존재하며, 시간을 측정하는 것은 인간만의 특성’이라 했다. 시간은 존재 자체가 절대적인 것 같지만 실체가 없으므로, 상대의 일반적 합의가 없다면 그 의미가 크게 퇴색되고 만다. 아니 아예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의 존재가치는 함께 사는 사회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합의된 기준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 혼자라면 모두가 함께 같은 장소에 모여야 하는 시간까지 얼마가 남았는지를 계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깨더라도 정보수집이고 시간판단이고 다 필요없이 그냥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뭐 그렇다고 세상에 혼자만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아닌데, 가끔

‘토요일 아침에 식사 후 바로 잠들었던 거라 아직 주말이 하루 반나절이 넘게 남아있다고!’

하는 것은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어쨌든 지금도 아직 주말이 하루 반나절이 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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