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 캠벨의 '그런 책은 없는데요...'
나는 작정을 하지 않는 한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책을 사지 않는 편인데 다른 이유는 아니고, 들고 다니기 무겁기 때문이다. 서점에 들어가서 이 책 저 책 뒤지다 보면 늘 서너 권은 고르게 되는데, 그중 가볍게 들고 갈 한 권을 선택하는 게 또 그렇게 어렵다. 그 이유로 골랐던 책들을 잘 적어두었다가 온라인 혹은 이북으로 구매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물론 아예 주문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더 많긴 하다.
얼마 전에도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근처 서점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그런 책은 없는데요'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표지도 심플하니 귀엽고, 글들도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유머코너처럼 짧아 부담이 없었다. 약속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으면 유병재의 '블랙코미디'처럼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버렸겠지만(죄송), 그때는 곧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계산대로 들고 가 계산을 했었다. 이런 책은 언제 서점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질지 모르기 때문에 바로 사는 것이 좋다.
이 책은 젠 캠벨이라는 사람이 영국의 고서점에서 일하면서 만났던 엉뚱한 손님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모은 책이다. 읽다 보면 '서점에서 일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한편으로는 '손님한테 너무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이야기들도 꽤 있다. 동방예의지국에 살았던 내가 보기에는 그랬지만, 역시 자유분방한 유럽 사람들에게 이 정도는 유쾌한 일상의 유머일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살 때 나이 든 사람과 대화하면서 가끔 한국에서는 절대 시도해보지 않았을 말들을 '여기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며 슬쩍 던졌던 경우가 있었는데, 대부분 '허허허, 유쾌한 사람이군' 정도의 반응이어서 짜릿함을 느꼈었다. 물론 한두 번 다른 사람을 통해 기분 나빠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긴 하지만...
다시 '그런 책은 없었는데요...'로 돌아와서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소개해 보자면,
손님: '브리짓 존스: 열정과 애정'있나요? 서가에는 안 보여요.
직원: 그 책이 지금 저희 서점에 없어요. 그래도 지금 바로 주문하면 48시간 안에 도착하거든요. 집으로 배송해드릴 수도 있고요.
손님: 난 영국 우체국 못 믿어요. 그 책을 우리 집에 팩스로 보내줄 수 있나요?
창의적인 손님이다.
손님: 여기 허구적인 fictional 소설은 어디에 있나요?
물론 무식한 손님도 있다.
손님: 이 책 먹을 수 있나요?
직원:... 아니요.
이렇게 한층 더 무식한 손님도 있다.
아이: 엄마, 이 책 사도 돼요?
엄마: 책 내려놔. 벤저민. 책이라면 우리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엄마에게 자주 듣던 말이다.
손님: 혹시 여기에 우유 있어요?
손님: 로또 복권 파세요?
손님: 일자 드라이버 팔아요?
사실 오래전에 교보문고에서 드라이버를 파는지 물어본 적이 있어 이 부분을 읽을 때 뜨끔했다.
손님: (실수로 오래되고 값비싼 책을 바닥에 떨어뜨림) 대박!
직원: (쳐다봄)
손님: 아니 그게... 죄송하다는 뜻입니다.
왠지 사랑스럽게 쳐다보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
뭐 이런 비슷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는데 사실 아주 위트가 넘치지도, 대박! 재미있지도 않아서 딱히 추천하긴 좀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책 한 권 끝냈다는 만족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역시 그런 이유로 추천하기는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