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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 알고 있는 자의 미소

개발자의 가시밭길

by Aprilamb


수혁은 십 년 차에 접어든 프로페셔널 개발자다. 그는 최근 중소기업청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의 소개로 주말마다 스타트업을 꿈꾸고 있는 학생들에게 재능기부 형태로 코칭을 해주고 있는데, 그날도 새로운 SNS를 설계하고 있는 한 스터디 그룹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역량은 부족하지만 열정이 넘쳤던 십 년 전의 자신과 너무 닮아 있어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가득 차올랐다.

토론을 마친 후 그는 사무실에 들렀다가 집에 가기 위해 로비로 내려왔는데, 조금 전 함께 스터디했던 친구 중 하나가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제 집에 가니?'


'앗. 네, 안녕하세요!'


그녀는 밝은 목소리로 수혁에게 인사했다. 소희는 그룹의 디자이너로, 오늘 토론 주제였던 UX(User Experience) 관련 꽤나 당차고 날카로운 견해를 쏟아냈었다.

그녀는 약속이 있어 강남역, 수혁은 집으로 가는 길로, 둘 다 우선 지하철 역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으로 걷게 되었다.


'왜 이렇게 늦었니?'


'저. 오늘 처음 제 디자인이 움직이는 것을 봤어요!'


그녀의 목소리 뒤로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린다.


'아 그래? 하하. 축하해.'


수혁은 그 순간 입사해서 처음 개발한 기능을 이관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도 그랬었다. 그가 구상했던 코드는 그날 저녁 바이너리로 컴파일되어 회사의 시스템에 밀려들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


두근두근거렸다.


식사 시간 때 이관하기 위해 남들보다 먼저 저녁을 먹고 있을 때에도, 당일 많은 이관 대상 중에 그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릴 때도, 이관이 완료되어 실제로 현업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시스템 화면 뒤로 그의 코드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때에도 수혁의 심장은 계속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두근거림은 지금까지 그 일을 계속하도록 그를 이끌었다.


지금은 연습장에 슥슥 그린 디자인이 실제 돌아가는 시스템이 되기도 하고, 건물 한 층을 모두 사용하게 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하지만, 수혁은 보잘것없는 수십 줄짜리 코드를 컴파일하던 그때만큼 가슴이 뛰어본 적은 없었다.


그는 약간 센티한 기분이 되어 헤어져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미소 지으며 살짝 이야기했다.


...

..


'앞으로 그 이상은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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