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무라카미 하루키 대담집)
나는 대담집을 좋아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비하인드 스토리를 본편보다 좋아하는데, 대담은 그 대상이 되는 사람으로부터 그것을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술술 읽히니까. 가볍지만 진지한 그 인터뷰를, 마치 수학 문제집의 정답 페이지나 천기를 적어 놓은 노트를 엿보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어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사실 대담이라면 - 약간 차이는 있지만 - 연예잡지에 커다란 전신사진과 함께 실리는 서너 페이지의 인터뷰가 가장 익숙하다. 평범한 근황 질문과 독자의 궁금함을 해소시키기 위한 난처한 질문을 몇 개 섞어 준비해서는
‘아. 그렇죠.’
혹은
‘그러니까요. 그런데, 그런 질문은 좀 난처한데요. 하하’
하며 살살 늘려 쓰다보면 서너 페이지는 뚝딱 나올 것 같은 그런 가벼운 인터뷰 코너. 물론 독자들도 대충 넘기며 가볍게 읽을 수 있으니 부담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다음 페이지의 ‘최신 IT 가젯 베스트 10’ 코너로 넘어가게 되면 대화의 대부분은 잊고 말겠지만.
하지만, 그런 식의 구성으로 대담집 한 권은 정말 어림도 없다는 거.
서론이 길었는데,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순전히 제목 때문에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라는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이 책은 일본 여류작가 가와카미 미에코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네 번의 대담을 했던 기록을 담고 있다. 그녀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집필했던 시기에 하루키와 진행했던 대담을 인연으로 ‘기사단장 이야기’ 탈고 후 세 번의 대담을 진행하고 이를 책으로 엮게 되었다고 한다. 우선 표지가 귀여웠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구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정말 그녀의 준비성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전 작품을 읽은 후 나름대로의 연대기를 준비하고, 각 시기에 따른 집필의 테크닉이나 작품이 추구하는 성향들을 나름대로 모두 분석하는 기염을 토했으니까. 물론 하루키의 엄청난 팬이었겠지만 - 아니라면 왠지 무서워질 것 같음 - 말이다. 아니, 어쩌면 책 한 권 분량의 대담을 위해서는 이 정도는 기본 인지도 모른다.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뒤쪽으로 갈수록 미에코의 집요함에 지루해지긴 했지만, 앞부분 -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세 번째 대담 까지는 - 꽤 재미있게 읽었다. 읽다 보면 종종 이런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는 경우가 있는데,
— 작품을 보면 이런 이런 관점에서 이런 식으로 진화가 일어나 결국 이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게 되는데요.
무라카미: 아 제가 그랬나요? 그다지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았거든요.
내가 알던 그의 성향이 그대로 투영된 반응이라 ‘사람은 참 안 변해’ 하며 미소 짓게 된다.
— 스스로를 알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하면 아무래도 ‘자아 찾기’ 같은 진부한 표현으로 함몰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아니다. 소설가에게는 문장을 갈고닦는 행위 속의 한순간. 그 체험이 곧 자기 자신이다. 소설가가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글을 쓴다거나 하는 행위가 아니라. 문장을 갈고 다듬는 행위 자체다. 요약하면 이런 얘기가 되겠군요.
실제 대화 상에서 저렇게 매끈하게 한 문장으로 이야기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런 식으로 뭔가 이야기하는 중간에 나름대로의 요약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놀랄 정도로 그런 것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 사람은 지금까지 내 말을 들은 거야?’ 하게 되는 사람도 있는데, 미에코는 그 중간에서 줄을 타고 있다고 할까?
어쨌든,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뒤쪽의 대담 세 개는 모두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가능하다면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고 난 후에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대담에 지친 하루키의 실수인지, 엮으며 논리 전개의 오류를 놓친 미에코의 실수인지 알 수 없는 대사 하나를 소개해볼까 하는데, 역시 지칠 정도로 너무 긴 대담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무라카미: 오슨 웰스의 영화 <시민 케인>에서 이탈리아에서 온 음악 선생이 가수 지망생인 케인의 부인을 가르치다 말고 이런 말을 해요. ‘세상에는 노래를 할 줄 아는 인간과 못하는 인간이 있습니다.’ 유명한 대사인데, 어쩌면 글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거의 글다운 글을 쓰지 못했어요. 그때부터 노력하며 조금씩 이런저런 것들을 쓸 수 있게 됐죠. 단계적으로 발전해온 거죠.
무라카미 씨. 그래서, 글쓰기 능력은 타고난다는 겁니까? 아니면, 노력하면 누구나 개발할 수 있다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