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아픔
어제 자전거를 타다가 심하게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완전 만신창이 되고 말았는데, 덕분에 걷는게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집에 가기 위해 살살 길을 걷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들고 있던 오토바이 헬멧으로 내 무릎을 강타했다. 대체 그런 걸 왜 들고 걷는거지?
안다. 이런 일은 종종 발생하는 일이니까. 지나가던 사람이 메고 있던 가방에 부딪힌다든지, 급하게 걸어가던 사람의 어깨에 밀쳐진다든지 하는 것. 하지만, 이건 너무 아팠다.
그래. 사내가 무릎 한번 부딪혔다고 길바닥에 주저앉기냐 하는 네 표정 나는 이해해. 넌 내가 어제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모를 테니까. 어쨌든 - 아파 죽겠지만 -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는 설명해줘야 할 것 같네. 이대로 엄살장이가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뭐라고 설명 해야하지?
‘아. 제가 어제 여름 이후 처음 자전거를 탔는데, 녹색 신호가 점멸하는 상태에서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다가, 우회전하기 위해 갑자기 튀어나온 차량에 놀라 핸들을 좌 90도로 휙 꺾고 말았는데, 그 덕에 몸이 순간 활공하여 왼손 날을 시작으로 턱, 오른쪽 어깨, 오른쪽 무릎을 차례로 바닥에 부딪히게 되어, 손날의 살점이 너덜거리게 되고, 무릎이 의도적으로 디자인된 청바지의 찢어진 부분을 통해 바로 시멘트 바닥을 완충재 없이 타격하여 작살나버리고, 턱도 관성의 법칙을 이기지 못해 바닥을 쓸어 마치 큐스위치 1064엔디야그 저출력법으로 피부 시술을 한 듯 매끈해져 버리고 말았거든요. 그런 사고로 인해 헬멧에 살짝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주저앉게 된 거랍니다.’
이건 너무 길어. 게다가 한 번에 말할 자신도 없네. 그렇다면,
‘똑바로 안 보고 다닐래?’
밑도 끝도 없이 명쾌해. 하지만,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 게다가 초면인데 설명도 없이 반말을 해버리는 것도 너무 못 배워먹은 놈 같잖아.
‘제가 무릎 아픈데, 조심해서 다니셔야죠.’
적절하지만 분이 안풀려. 해소되지 못한 억울함은 스트레스가 되어 두고두고 내 건강에 영향을 미치겠지. 게다가 생각날 때마다 분할 것만 같잖아.
‘무릎이 결딴난 상태라 걷는 것도 힘든데, 상처 부위를 헬멧으로 찍니? 네 부모가 그러고 다니라던?’
역시 반말은 별로라고 생각한다.
‘무릎을 다친 상태라 걷는 것도 힘든데, 상처 부위를 헬멧으로 가격하시다니요. 부모님께 그렇게 학습 받으셨습니까?’
아무래도 부모님까지 끌어들여 모욕을 주는 건 사내답지 못한 거 아닌가?
‘무릎을 다친 상태라 걷는 것도 힘든데, 상처 부위를 헬멧으로 가격하시다니요?’
말을 뺐더니 뭔가 허전하다.
‘무릎을 다친 상태라 걷는 것도 힘든데, 상처 부위를 헬멧으로 가격하시다니요? 그런데, 부모님은 건강하신지요?’
……
…
설명적이면서도 통쾌하고 예의 바르면서도 모욕적인 문장을 고안해내는 동안, 헬멧을 든 사람은 이미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