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어제는 정말 하루 종일 자버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을 먹고 나서 ‘오늘은 뭘 할까?’ 하며 잠깐 거실에 누웠다가 일어나니 저녁이었다. 딱히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왠지 엄청난 손해를 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인터넷에서
오늘 정말 날씨 너무 좋지 않았어?
같은 내용의 포스트를 보게 되면 더욱더 가슴이 아파진다. 누군가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글을 올렸다.
하늘이 마치 얼마 전에 다녀온 스페인의 말라가 같았어.
'말라가'라면 며칠 전 읽었던 ‘가장 날씨가 좋은 10개의 도시’라는 글에서 세계 두 번째로 좋은 날씨를 자랑하던 곳이다. 그곳을 가보지 않고도 그 축복받은 날씨를 경험할 수 있는 날을 놓쳤다니! 마음을 가다듬고 ‘남은 하루를 더 잘 보내면 돼’ 라고 해봤자 '말라가'를 이길 만한 무언가를 생각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것도 안 한 것 만으로 이렇게 절망적일 수가 있다니...
어쨌든 그대로 남은 저녁을 평범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말라가의 해변에서 태양을 담뿍 받으며 축복받은 날씨를 즐기는 것과 비등한 일을 해야 만 했다. 또 잠들어버릴까봐 우선 커피부터 내렸다. 빌어먹을 잠 때문에 이렇게 불행해졌다는 걸 잊으면 안 되니까. 밤새 즐겨 일요일이 아작 나더라도 남은 저녁은 놀라울 정도로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커피를 들고 천천히 거실로 와서는 음악을 낮은 볼륨으로 걸었다. 시간이 시간이니 만큼 래리 칼튼의 Sleepwalk가 딱 어울린다. 커피를 테이블에 놓아두고는, 비교대상이 되는 경험의 만족도를 측정해보기 위해 소파에 앉아 살짝 눈을 감았다. 가본 적은 없지만, 말라가의 햇살을 상상해보면 된다. 그리고, 그 정도의 행복을 느낄만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면 되는 것이다.
…
..
그렇게 눈을 떠보니 오늘 아침이었다. 심지어 - 곡 제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 처음 걸었던 곡이 끝나기도 전에 잠들어 버린 것이다.
세상에 낮에 여덟 시간을 자고는 커피까지 마시고, 다시 바로 잠들 수 있는 인간이 있나?
그게 바로 나였다. 답답한 마음으로 그대로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었는데, 이런 기사가 있다.
말라가의 실업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스페인 전체의 20대 실업률이 10%대 후반을 왔다 갔다 하는 데 반해 말라가의 20대 실업률은 30~40%를 웃돌기 때문이다
...
이런, 말라가도 우울하겠는걸?
왠지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