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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Oct 27. 2018

멀미와 손짜장면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독 멀미를 잘했다. 그것도 잘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나 싶긴 하지만, 잘하는 게 모두 자랑스러워야만 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나는 거짓말도 잘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도 차를 오래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멀미를 잘했던 내게 가장 힘들었던 일은 명절마다 외갓집에 가는 일이었다. 그때쯤의 일들은 대부분 희미하거나 잊혔는데, 유독 외갓집에 가기 위해 차를 타고 한 시간 이상 가던 일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차의 뒷좌석에 앉아 도착할 때까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사람처럼 - 나는 놀이기구도 못 탄다 - 눈을 감고서는 세반 고리관이 좀 더 제대로 일하기만을 바랬다. 세반 고리관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도착하고 나도 꽤나 오랫동안 어질어질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차에 타면 다시 내리게 될 때까지 달 뒤편에 혼자 다녀온다. 대화 - 이런 거 없이, 무조건 머리를 가장 확실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위치에 두고는 시체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음악을 듣던, 대화를 하던, 그러다가 내 의견을 물어보던 말던, 미동도 하지 않는데, 심지어는 생사확인을 위해 내 코 밑에 손가락을 대보는 사람도 있다.(그럴 때는 물론 숨을 참아 놀라게 해 준다)


멀미는 시각과 다른 감각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할 때 발생하게 되는데, 일종의 신체 기관 레벨의 인지부조화 현상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자연스럽지 못한 현상이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사람을 불편하게 하듯, 뇌도 같은 상황 속에서- 한 몸이기 때문에 늘 같은 외부 상황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음 - 각 기관들이 서로 다른 정보를 보내오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눈으로 보이는 광경은 큰 변화가 없는데 감각 기관들은 지속적으로 상하좌우로 흔들린다고 신호를 보내오니 대뇌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그냥 짜증만 내고 말면 크게 불편한 건 없었을 텐데, 이를 기관의 오작동으로 판단해버리는 것이 멀미의 원인이라고 한다. 문제를 찾아내기 위해 자율신경이 다른 감각기관들을 더욱더 예민하게 동작하게 하고, 이 때문에 후각이 강화되고 비위가 약해지기 때문에 멀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멀미를 안 하는 사람은 평생 알 수 없겠지만 하는 사람에겐 엄청난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는데, 어렸을 때는 '내가 왜 시지프스, 프로메테우스, 탄탈로스 같은 원죄의 아이콘들처럼 이런 벌을 받아야 하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간을 뜯기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아무래도 바위를 굴려 올리는 것보다는 훨씬 고통스러울 것 같다.




뜬금없이 멀미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친구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지더니 곤지암의 손짜장집을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서울에도 블록 건너마다 중국집이 있는데 대체 왜 곤지암까지 가서 짜장면을 먹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잖아. 뭔가 다른 제안을 하고 싶었지만 먹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나는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억울하지만 끌려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체처럼 이동해서는 멀미 때문에 메슥거리는 상태로 - 집에서 삼분만 걸어가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그 짜장면을 -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먹었는지도 모르게 흡입하고 바깥으로 나왔는데, 정말 다시 차를 타고 집에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진심으로 곤지암 리조트에서 일박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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