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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Dec 09. 2018

꿀 빠는 모기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난데없이 모기가 한 마리 주변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아니, 겨울에 웬 모기야?’


올해는 여름에도 모기를 보기 힘들었어서 멸종해버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는데 말이다. 혹시 지난주 함박눈이 와서 베란다에 장구벌레용 물웅덩이라도 생겼던 걸까? 어쨌든,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귀 주변을 날아다닐 때마다 날갯짓 소리에 소름이 끼쳐서 도무지 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고 뭐고 그냥 살 냄새나는 동물에게 돌진하는 본능 덕에 1억 5천만 년 동안 끈질기게 생존해왔던 모기. 이 종이 인류보다 오래 존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지금 내 주변을 날아다니는 저놈 만큼은


‘잡아야겠어.’


라고 생각했다. 모기에게 물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길거리 노숙자에게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는 게 더 나으니까. 빨리 집중해서 잡아버리지 않으면 노숙자에게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는 일보다 더 심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모기를 잡기 위해 미동도 하지 않고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뒤쪽에서 웽 소리를 들어도 - 모기의 선회 속도가 내 안구의 회전 속도보다 월등히 빨라서 그런지 - 모기를 볼 수 조차 없었다. 밤이라면 전등 근처에서 쉽게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대낮엔 전등도 유리 꽃병만큼 모기에게 인기가 없다. 아니 그런데 애초에 대낮에 모기가 왜 날아다니고 있는 거지? 생각해보니 이런 건 전에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희한한 상황이다.


모기는 국내에서도 짜증 나는 존재지만 열대지역과 아열대 지역에서는 짜증 수준을 넘어서는 치명적인 동물이다. 뎅기열, 치쿤구니야 열병, 말라리아, 지카 바이러스 등 옮기는 병부터 가벼운 것이 하나도 없다.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래 봤자 모기에게 물리지 않는 것뿐인데, 그게 마음먹는다고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초등학교 때 즈음이었을 거다. 여름 방학 시작 전날 조회에서 선생님이 '여러분들 모기에게 물리지 마세요.'라고 물었던 게. 그때  반 전체는 일제히 '네'라고 대답했지만, 그건 모기에 물리지 않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집에 빨리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구글이 모기 박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샌프란시스코 남동쪽의 프레즈노라는 지역은 5년쯤 전부터 이집트숲 모기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었고, 그 이유로 카운티 당국은 모기 박멸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6년 스티브 돕슨이라는 과학자가 수컷 모기를 볼바키아 Wolbachia라는 박테리아에 감염시키는 기술을 고안해냈고, 구글은 2017년부터 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구글은 박테리아에 감염된 수컷 모기를 기르고 방사시키는 작업을 도왔는데 - 모기를 기른다니 왠지 양귀비를 기르는 마약상 같은 느낌이지만 - 결과는 기대 이상이어서 90%에 달하는 주변 모기 개체 수를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결과는 경이롭지만 수만 마리의 수컷 모기가 방생되는 모습을 상상하면 왠지 공포스러운데, 사실 그 정도 수라면 비둘기라도 무서울 것 같다.


어쨌든 구글의 방법도 지금 내게는 쓸모가 없는 게, 박테리아를 저놈 등짝에 주사기로 주입해봤자 다음 세대에 가서야 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주사기로 주입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예 때려잡는 게 낫겠지. 그런데, 갑자기 뉴스에서 이런 내용이 흘러나왔다.


'최근 한국응용곤충학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모기는 달달한 향을 좋아하기 때문에 주변에 꿀을 살짝 비벼 펼쳐두면 피 대신 꿀을 빤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 되나? 물론 모기의 암컷들은 꽃의 꿀을 빨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피가 옆에 있는데 과연 꿀을 빨까? 모기 같은 사악한 생물체가 꿀을 빠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그 말을 믿고 손바닥에 꿀을 펴 바르고 기다리는 것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시도할만한 별다른 방법이 없긴 했다.

나는 주방 찬장에서 꿀통을 꺼내와서는 손바닥에 꿀을 펴 바른 후 모기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대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 걸까? 하지만, 얼마 되지도 않아 손바닥 위에 엄지손톱만 한 타이거 모기가 사뿐히 내려앉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순간 나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그 위로 다른 손바닥을 던져 모기의 압살을 유도했다. 그러자 모기는 꿀이 발려있던 손바닥을 온 힘을 다해 찔러왔고, 아래쪽 손바닥은 점점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마주치는 소리가 났을 때 이미 죽었어야 했을 모기는 절지동물의 다리가 꺾이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 안에서 점점 팽창하고 있었고, 양 손은 마치 마른 솔방울을 움켜쥔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무서웠다. 


'이건 뭔가 이상해.'


아무래도 현실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응용곤충학회라는 것이 있었나?'



............



하면서 바로 잠에서 깨고 말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나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한국응용곤충학회는 존재했지만 모기가 사람의 피보다 꿀을 더 좋아한다는 연구발표는 어디에도 없었다. 만약 그런 발표까지 있었다면 정말 무서웠을 것 같은데, 솔직히 한국 응용곤충학회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아직 으스스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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