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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Nov 26. 2018

계절의 가운데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올해 첫눈이 왔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속에서 창 밖을 내다보니 바깥이 온통 눈이었지만 '아 눈이다.' 보다는 '어. 왜지?'하고 말았는데, 아직 가을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나 보다. 여전히 길가의 가로수에는 떨어지지 않은 낙엽이 가득했고, 날씨는 니트에 얇은 점퍼만 걸치고 다녀도 견딜만했으니까.

일기예보에서는 올해 가을이 짧고 겨울이 무척 추울 것이라고 했었지만, 나는 생각보다 긴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선선해진 거리를 질릴 때까지 걸었고, 주말이면 자전거에 올라 서울의 가장자리까지 내달렸다. 옷깃을 여미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을 필요도 없었고, 머리를 다 말리지 않은 채 나와도 견딜만했다. 블레이저 없이 셔츠에 니트만 걸치던, 두터운 모직 코트를 입던 모두 크게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 - 어제까지만 해도 - 계속되고 있었다는 거.


그런데, 갑자기 눈이라니. 게다가, 이때쯤에 어울릴 만한 - 모두가 비라고 생각했지만, 관찰력이 뛰어난 나는 눈송이를 감지하고 말았다던가 하는 - 그런 눈이 아니라, 한 겨울에 내릴 법한 펑펑 내리는 함박눈이다.


왠지 일어나기 싫어져서 누운 채로 존 레넌의 'Woman'을 들었다. ’Woman’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 발매되었던 싱글로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에서는 차트 정상을, 미국에서는 차트 2위까지 올랐었다. 이 곡을 들으면서 여성들은 더욱더 존 레넌을 그리워했겠지만, 그 당시 남자들은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죽어서까지 우리와 경쟁하자는 거야?' 하면서 말이다. 심심한 곡이긴 하지만 오늘같이 애매한 날씨에는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서너 번 돌려 듣다가 조금 지겨워져서, 천천히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씻고 거실로 나오니 창 밖에는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다.


'이제는 인정해야겠는걸...'


동시에 가을이 등 뒤쪽으로 성큼 물러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괜찮았다. 가을은 어떻게 헤어져도 생각날 때쯤이면 늘 다시 내게 돌아와 줄테니 말이다. 언제나처럼 내년도 금방 올 테고, 그러다 보면 가을도 금방 다시 오겠지.


그렇게 빈둥거리다가 오후에 바깥으로 나왔는데,


눈은 온데간데없고


아직 가을이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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