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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반가워서...

신청곡(Feat. SUGA of BTS) - 이소라

by Aprilamb

요즘 정말 그랬습니다.


아이폰에서 이어폰 단자가 사라져 버린 후,

더 이상 내 기기에 음악을 저장하지 않게 된 후,

가슴을 울리는 뮤지션들이 월/주/일간 차트 뒤로 숨어버리게 된 후,


저는 음악 없이도 잘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니, 스스로의 의지로 음악을 멀리했던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음악이 내게서 멀어진 거죠.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듯, 오래된 여자 친구가 떠나가듯...


......


음악이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 껍데기 뒤에는 진실하고, 가슴 뭉클하고, 아프고, 두근거리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요.

어떤 예술가라고 해도 작품을 스텐실로 원하는 곳에 쉽게 긁어 밀어붙이거나, 일정 시간마다 컨베어 벨트의 끝에서 초콜릿 박스를 떨어지게 하듯 만들어내기는 불가능하다는 것.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와 천둥은 그렇게 울었고, 간밤엔 무서리가 내렸고, 나는 잠도 오지 않았다는 서정주의 시처럼, 마음을 울리는 곡을 만들기 위해 그들도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는 것.


'비긴 어게인(JTBC)'에서 이소라가 멤버들과 함께 U2, Guns N' Roses 등의 유명한 그룹이 레코딩 작업을 했던 성지, 슬래인 캐슬에서 어떤 곡을 연주할까 이야기할 때, '바람이 분다'는 부를 수 없다고 했던 게 아직도 가끔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은 너무 까다로운 것 아니냐고 했지만, 저는 그게 그렇지 않았어요. 이소라라면 분명히, 그 곡을 부를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바람이 분다'는 제게도 다른 일을 하면서 흘려들을 수 있는 곡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가만히 부르지만, 듣는 저는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멜로디에 생각이 갇히고, 목소리에 몸이 굳고, 그렇게 노래가 끝날 때까지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요. 친구들과 신나는 이야기를 했거나, 예능을 보면서 실컷 웃고 난 직후라도 이 곡만 들으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아버리는 거죠.


......


그런 그녀의 신곡이 꽤 오랜만에 릴리즈 되었어요. '신청곡'이라는 제목의 이 곡은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작사/작곡을 하고 BTS의 슈가가 랩 피처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녀는 타블로의 전매특허 감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멜로디를 덤덤한 보컬로 천천히 밟아나가는데, 그녀답게 너무 과하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아요. 가을 낙엽이 떨어져 있는 길을 걷듯, 봄바람이 불어오는 창문을 내다보듯,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슬픈 이야기는 여전히 가슴 아프고, 사랑스럽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 하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그만큼만 아프고 흘려보낼 수 있으면 괜찮은 거야." 하고 토닥거려주고 싶은,


특별하지 않아서 너무 소중한 그녀의 신곡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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