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prilamb Apr 29. 2019

중고장터와 낮잠 자는 바다표범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따라 건대 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큰 광장에 사람들이 시끌시끌 모여 있다. 뭔가 하고 그쪽으로 가보니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주민 중고장터 행사였다.


몇 년 전 파리를 여행할 때 생각지도 못했던 주말 중고장터를 접하고는 한 시간 동안 구경하다가 키보드 하나를 집어왔었다. 그러고는 숙소에 돌아와서 테스트해보니 'K'와 'O'가 눌리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눌리긴 했지만 작동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크게 기분 나쁘지 않았던 건 장터를 구경했던 그때가 그날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었네?'


평소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알 리가 없다. 생각해보니 밴쿠버에서도 길을 헤매다가 헤이스팅스 Hastings라는 거리에서 비슷한 중고장터를 만난 적이 있다. 그곳에서도 나는 중고 음반 판매자 사이를 뒤적거리며 꽤 재미있게 구경했었다. 훨씬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곳은 노숙자들의 거리로 그 장터에서 자신들의 장물이나 마약을 거래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샌프란시스코의 텐더로인 Tenderloin(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도 혼자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두 시간 동안 랩탑을 두드리기도 했었다. 모르는 게 약인 인생이다.  


...


나는 자전거를 기둥에 묶어두고는 천천히 광장을 돌며 매장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시간은 늘어지게 많았고, 별다른 할 일도 없었다. 판매자들은 인 당 돗자리 한 두 개 정도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큰 광장이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찼다.

이제 막 시작인지 판매자들은 나름대로 준비한 물건들을 예쁘게 진열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대부분은 옷가지들이 많고, 나머지는 아이 장난감이 대부분이다. 파리에서는 중고 음반이나 기기들을 판매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런 물건들은 거의 없었다. 옷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그냥 돌아갈까 하고 있는데, 구석에서 작은 장난감들을 잔뜩 진열해 놓은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귀여워'


돗자리 위에는 토토로부터 무민까지 귀여운 장난감들이 한가득이었다. 대충 눈으로 훑고 있는데,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눈이 큰 판매자가 '편하게 골라보세요' 한다. 그 말에 바로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피겨가 잔뜩 들어있는 양철통 안에서 귀여운 '낮잠 자는 고릴라'를 발견했다.


'이거 얼마예요?' 하고 물어보니,

'오백 원이에요.' 한다. 그리고는 바로 이어서,

'그 통에 있는 것 골라 집으시는 대로 오백 원에 다 드릴게요.' 하며 싱긋 웃는다.


이런, 그 통에는 정말 귀여운 피겨들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나는 낮잠 자는 바다표범 하나만을 더 골라 들었다. 그 이상 바라면 오늘 내 운은 끝나버릴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두 개 주세요.' 했더니 그녀는,

'이것도 가져가세요. 생각보다 귀여워요.' 하며 같은 통 속에서 양갈래 머리를 묶은 앙칼진 꼬마 여자아이 피겨도 같이 넣어준다.


...


날씨도 좋았고,

장터도 재미있었고,

책상 위에서 웃으며 자고 있는 피겨도 귀여우니 - 오늘 내 운은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지만 -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각과 후각의 상관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