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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Jun 24. 2019

문득... 비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아침 창밖을 보니 우중충해 보이길래 아침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밖으로 나왔더니 길바닥이 촉촉했다. 새벽에 비가 내렸나 보다. 비가 온 다음이니 미세먼지도 별로 없겠지. 아파트 정문 쪽으로 걷다 보니 서늘한 공기가 훅 다가오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언젠가부터 서울의 여름 아침 햇살이 캘리포니아의 대낮 같아서 바로 집을 나서도 산뜻한 기분은 한순간이었다. 대각선으로 떨어지는 햇살에 피부는 바스락거리고, 걷는 방향의 시선은 직사광선에 하얗게 흩어져버린다. 마치 정오의 샌프란시스코 텐더로인 언덕을 걸어 올라가는 것처럼.  

돌팔매질 없는 골고다 언덕 같은 그 빌어먹을 언덕길은 정오에는 건물 그림자조차 생기지 않았다. 언덕을 올라갈 때는 그저 빨리 언덕길을 벗어나 그늘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오르는 정오의 텐더로인은 아무리 걸어도 도무지 끝이 나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샌프란시스코가 살기 좋은 날씨라고 한 거야?'


분명히 살아보지도 않은 놈이 연평균 기온만 보고 지껄였을 거야 했었다. 어쨌든 오늘은 빗소리와 함께 피부 촉촉하게 발끝만 보면서 지구 끝까지라도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아늑한 날씨다. 물론 그만큼 걸을 필요는 없지만.

이렇게 가끔 더워지려나 싶게 뜨겁다가, 때때로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다시 몇 번 찬 저녁 바람에 놀라다 보면,


육지가 내려앉을 만큼 비가 쏟아지는 장마가 오고,

이내 온도가 체온을 넘어서는 습한 여름이 올 테지.


그래도 - 하루에 사계절을 겪게 되는 샌프란시스코와는 다르게 - 그것들을 대비할 시간은 충분히 주어질 테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훅훅 바뀌는 샌프란시스코가 갑자기 예고 없는 총알이 날아드는 전쟁터 같다면, 계절 내에 비슷한 날씨가 지속되는 우리나라는 마치 어설픈 은행강도가 들이닥친 시골 협동조합 같다.


'하던 일 모두 멈추고 엎드리라고!' 할 때 엎드리지 못했다면,

다시 한번 ‘엎드리라니까?' 하고 외칠 때 움직이면 된다.


오늘 같은 날은 바닥을 걸을 때 찰박찰박 얕은 웅덩이만 신경 쓰면서 선선한 날씨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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