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그게 잘 안되던 책 중 하나였어요. 노벨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준비하고 진중하게 읽어 내려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게 있거든요.
하지만, 늘 그 보상은 어느 정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그 책 어때?' 하면 바로 답하지 않고 조금은 더 생각하게 되는 그런 것. 수상작들은 '재미있어.' 혹은 '잘 읽혀.' 하고 툭 던지지 못하는 진중한 무게가 있고, 과학적으로는 유기체로 분류해야만 할 것 같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은 홀로코스트의 악랄함을 담고 있는 다른 여러 문학작품과는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그는 절대적 피해자의 입장에서 나치의 비인간적인 만행을 기술하는 대신, 주인공을 상황의 한걸음 뒤편에 세우고는 그의 드라이한 시선으로 홀로코스트를 바라봐요. 수용소에서의 잔인한 학살과 비참한 대우에 대한 고발보다는, 수감자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 삶을 살아냈는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동족이 만들어낸 가장 비인간적인 장소에서도 유대인들이 인간으로서 생활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의 존엄성을 말 대신 가슴으로 전달하는 거죠.
'운명'에는 나치의 잔인성이나 수용소의 비인간적인 모습이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기 때문에, 홀로코스트에 대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기에 부족한 작품이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의 존엄성과 대비된 아우슈비츠의 높은 회벽은 더욱더 높게 느껴지고,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인공과 대치되는 나치의 야만성은 한층 더 잔인하게 다가와요. 작가는 그렇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슬픈 역사적 사실의 모순을 극명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소년 죄르지의 삶은 홀로코스트 전과 후로 나뉘지 않아요. 그는 이 이야기 내에서 진중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의 변화 후에도 이전처럼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홀로코스트의 잔인함에 대비되어 독자에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읽고 난 후에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책이 있고, 제게는 '운명'이 그런 책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혹시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권하고 싶어 진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