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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Oct 07. 2019

이른 시작은 모든 것을 이르게 만든다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오늘은 의도치 않게 조금 일찍 하루가 시작됐다. 새벽부터 강아지가 끙끙거렸고, 덕분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잠에서 깬 후에도 얼마 동안은 침대에 조금 더 누워있었다. 갑자기 국회에서 올해부터 우리나라는 주말에도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에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릴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내가 부스럭거리자 망고(강아지)가 천천히 내 옆으로 와서는 덮고 있는 이불을 툭툭 건드린다.

'걱정하지 마. 일요일은 무사해. 빨리 이불이나 들어줘. 들어가게.' 강아지는 왜 내내 소파 위에서 자다가도 새벽만 되면 이불속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걸까? 어쨌든 망고는 이불속에서 내게 등을 대고 누웠고, 나는 조금 멍한 상태로 꿈과 현실의 경계를 긋기 시작했다.


‘오늘은 월요일이고, 일을 하러 가야 해. 뉴스는 꿈이었고, 일주일 메커니즘은 - 영원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 아직까지는 그대로야.’


그렇게 안심한 채로 조금 더 이불속에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욕실에서 나오니 문 밖에 망고가 기다리고 있길래 번쩍 들어 화장대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뉴스를 들으며 머리를 말린다. 드라이어 소리와 함께 뉴스가 거실에 흩어진다. 머리를 대충 말리고는 옷장에서 바지를 꺼내 입고, 그 색깔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셔츠를 찾아 걸쳤다. 물론 실제로 어울리는지는 알 수 없다. 가방을 들고 방을 나오는데, 책꽂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시간이 많이 이르니 미팅 시간 전에 근처에서 책을 좀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래전에 샀지만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어 띠지를 벗긴 후 메신저백에 집어넣었다.


평소보다 일찍 나왔더니 지하철도 한산했다. 객실에 오를 때부터 비어있던 자리에 앉아 집어온 책을 꺼내 든다. 소설 속의 상황이 생경하지 않은 것을 보니 읽은 책 같았지만, 결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낯설지 않은 배경에서 여자 친구에게 핸리 맨시니의 ‘Dear Heart’ 앨범을 선물하고 있었고, 나는 스마트폰을 뒤져 그 음악을 찾아들었다. 금요일 밤 정도의 시간에 어울리는 느긋한 곡이었는데, 듣고 있다 보니 미팅에 가기 싫어졌다.
미팅 장소 근처의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고는 -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일하고 싶어 지는 음악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성실한 편이니까. 플레이리스트를 뒤지다 보니 윤석철 트리오의 ‘여대 앞에 사는 남자’가 보인다. 조금 흥겨운 곡. 하지만, 그 곡을 들었더니 괜히 여대 앞에 가고 싶어 졌다. 제목에 충실한 감정 반응이라기보다는 미팅에 가기 싫은 것이겠지. 별 소득 없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커피가 준비되었는지 점원이 내 이름을 불렀다.

픽업대 앞으로 가보니 내가 주문했던 아메리카노가 깔끔한 종이컵에 담겨 있다. 나는 얼른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스타벅스에서는 종이컵을 들고 매장에 앉아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그것만은 확실하게 지킨다.(다른 곳은 대부분 ‘네네 금방 나가요.’ 하면 조금은 앉아있을 수 있다.)


덕분에 책은 더 읽지 못했고, 미팅 장소에는 가장 먼저 도착하고 말았다. 일찍 일어난 날은 모든 것에 미적거린다 해도 늘 이르다.


그래도 내일은 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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