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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Dec 07. 2019

스타벅스 다이어리 챌린지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시작됐어요.'


'뭐가?'


'스타벅스 다이어리 얼리버드 챌린지요.'


연말이라 수습되지 않는 프로젝트들 때문에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신경도 못쓰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후배가 캘린더 앱의 알람 팝업처럼 입을 열었다. 스타벅스에서는 매년 프리퀀시 다이어리 행사의 첫 주를 1+1으로 시작한다. 마치 우물 옆 펌프에 마중물을 넣는 것처럼.

하긴 애매하게 겨울 내내 신경 쓰느니 시작과 함께 깔끔하게 끝내버리는 게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년에 받았던 노란색 다이어리도 이름만 써놓은 채로 책상 속에 그대로 누워 있다. 디지털 세대에게 시대착오적인 종이 다이어리라니. 아니 디지털이고 뭐고, 나는 메모를 하고 나서 다시 찾아보지도 않는 성격인 것이다.


'작년 것도 그대로 있다고.' 하고 말하자 후배는


'가을 되기 전에 트렌치코트를 준비하는 것과 같은 거죠 뭐.' 한다. 하긴 몇 번 입지는 못해도 준비는 해두게 된다. 새 코트를 사든, 작년에 입던 코트를 드라이 맡기든...


'월요일까지 스페셜 음료 3잔에 일반 음료 5잔. 8개만 채워봐요. 나머지는 제가 준비합니다.'


나는 시키는 일은 - 툴툴거리기는 하지만 - 꽤 성실히 이행하는 편이다. 미션을 받은 이후로는 커피를 마실 때, 거리가 약간 멀어도, 가격이 조금 비싸도 꼭 스타벅스를 이용했다. 그런데, 스페셜 음료는 생각보다 인기가 없어서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저는 돌체 라테요.'


'응, 그래. 토피 넛 라테 휘핑크림 빼고. 괜찮지?'


....


'캐러멜 프라푸치노요.'


'응, 대신 홀리데이 민트 초콜릿 크림 프라푸치노 어때?'


'민트 싫은데...'


'이 한번 더 닦는다고 생각하고 부탁해.'


....


월요일까지라고 했지만 조금 일찍 미션을 클리어한 나는, 방학이 끝난 후 선생님께 탐구과제를 제출하듯 후배에게 약속했던 8개의 스티커를 전송했다.


다음 날 아침 책상 위에는 후배가 올려둔 녹색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올려져 있었다. 후배도 나 못지않게 성실한 것이다. 포장 비닐을 제거하고 안쪽을 들여다보니, 이 다이어리는 2020년 내내 하루에 한 페이지씩을 꼬박꼬박 할당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앞쪽의 Personal Data 페이지를 열고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또박또박 적었다. 그 외에도 꽤 많은 필드가 있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년에 이 다이어리를 열심히 사용하게 될지, 아니면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은 채로 그냥 놓아두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스타벅스 다이어리 챌린지가 시작되면

엄청 추운 날들이 시작되고

금방 다음 해가 온다는 것이다.


올해 겨울도 작년처럼 따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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