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자신과의 대화
“잠깐 나와봐."
- 왜? 무슨 일이야?
"나 머리 좀 잘라야겠어."
- 갑자기 머리는 왜? 아직 자른 지 한 달 밖에 안됐잖아?
"그렇긴 한데. 너도 알잖아 내가 좀 섬세하잖아."
- 응, 까다롭지.
"바깥에서 거울을 봤는데, 미세하게 오른쪽 귀밑머리가 왼쪽보다 조금 더 떠 있더라고. 물론 다른 사람들은 몰랐을 거야."
- 그렇지, 너한테 신경 안 쓰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차이가 미세하니까. 어쨌든 난 그게 너무 거슬리는 거야."
- 그래서 머리를 자른다고?
"이대로는 계속 신경 쓰여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내 성격 알잖아."
- 응, 집중력이 없지. 그런데, 원인부터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니니?
"내가 안 했겠니? 그런 건 머리 뜬 걸 알아챈 직후에 벌써 했지. 아마도, 직전 머리를 할 때 헤어디자이너가 미세한 실수를 했을 거야. 하지만, 그때는 머리가 좀 짧으니까 크게 티가 안 났겠지? 나도 몰랐을 정도니까."
- 실수 없이 잘 잘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하니?
"됐고. 그 이후에 점점 머리가 자랐을 거 아냐? 미세한 차이는 머리가 길면서 좀 더 눈에 띄게 되고, 머리카락마다 자라는 속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지저분하게 보이게 된 거지."
- 그래?
"응. 뭐 실수를 할 수는 있는 거니까. 그걸 탓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지저분한 건 견딜 수 없으니 다시 머리를 해야겠어."
- 내가 보기엔 다른 이유가 있는데?
"무슨 소리야 그게?"
- 너 오늘 아침에 뭔가 빼먹은 거 없니?
"조금 늦게 일어나서, 마음속으로 '오늘도 파이팅!' 이렇게 기합을 넣는 걸 까먹긴 했지. 어떻게 알았어?"
- 내가 넌데 그걸 모를 리가 없잖아. 그런데, 그거 말고.
"음. 없는 것 같은데?"
- 욕 실 에 서.
"음,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샤워를.. 아 아앗. 머리를 안 감았어."
- 그래. 너 아침에 일어날 때 어땠니?
"목이 좀 아팠는데..."
- 베개 옆쪽으로 대가리가 떨어진 채로 잠들었으니까.
"그래서 아팠구나? 어쩐지."
- 머리만 아픈 게 아니라, 머리카락도 눌렸겠지.
"......"
- 긴말할 필요 없고, 머리 감고 나와봐.
"......"
- ......
"아 개운해. 우리 피자 시켜 먹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