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때문에 짜파구리가 핫하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내 머릿속에는 얼마 전 ‘놀면 뭐하니?’에서 봤던 이연복 셰프의 간짜장 짜파게티가 맴돌고 있었다. 유재석 라면집의 새 메뉴로 그가 소개해줬던 이 요리는 - 먹음직스러웠던 것도 있지만 - 요리법이 간단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올리브유에 자잘하게 썬 돼지고기를 자글자글 볶다가 숭덩숭덩 큼지막하게 썬 양파를 짜장 수프와 함께 넣고 슥슥 몇 번 저으니 웍 안에는 벌써 윤기 나는 간짜장이 찰랑거렸다. 이연복 셰프는 그 간짜장을 미리 삶아 놓은 면에 들이부었고, 그게 끝이었다. 아무래도 이 방송이 나간 후에 전국 중국집 간짜장 매출이 줄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파격적이고 혁신적이다.
그 생각을 내내 하며 집에 가다가 나도 모르게 마트에 들러서 돼지고기 한 줌과 양파를 샀다.(짜파게티는 집에 있으니 사지 않아도 된다.) 나는 양파와 돼지고기가 든 비닐을 흔들며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날씨가 따뜻해서 이대로 지구 끝까지라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집은 십 분만 걸으면 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는 바로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둘렀고, 요리를 완료하는 데는 채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가 마트 입구라고 하면 천천히 걸어오라고 한 후 요리를 시작한다. 그러면, 도착하자마자 짜파게티 간짜장을 함께 먹을 수 있다. 조금 더 천천히 걷게 하면 계란 프라이도 올려줄 수 있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고 나서 바깥을 보니 - 이미 오후 여덟 시가 지나서 그런지 - 컴컴했다. 청소는 끝냈지만 집 안에 가득한 돼지고기 기름 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나는 등을 끈 후에 향초 몇 개를 꺼내 집안 여기저기에 켜 두었다. 그리고는 집의 모든 창문을 열고 엔리오 모리코네의 ‘Sentimental Walk’를 크게 틀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 동안 가만히 거실 바닥에 앉아 그 곡을 들었다. 이 곡은 텅 빈 곳에서 혼자 들으면 정말,
너무 좋다.
어둠 속에서 창으로 흘러들어오는 봄바람에 소파도, 거실도, 나도, 음악도 기분 좋게 흔들거렸다.
아주 어릴 적 심한 감기로 이불속에 누워있을 때도 이랬던 적이 있다. 그때도 몸이, 누워있던 방이, 책상이 공중에 뜬 것처럼 흔들거렸다. 머릿속에는 몸이 떠있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과, 지면과, 대지와 유리된 내 몸뚱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웠다. 물론 머리도 아프고 코도 시큰거렸지만, 그런 느낌은 처음이어서 그랬는지 정말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가 생각났다. 돼지고기 냄새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꼬인 위치에 있던 과거와의 생각지도 못한 조우에 취해 계속 그렇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러든 말든
올해 처음 온몸으로 맞는 봄바람은 돌림 노래처럼 끝도 없이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