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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May 16. 2020

현세대 인류의 짜증 공통분모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나는 평소에 짜증을 많이 내는 편은 아니다. 물론 성격이 무던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짜증을 낼만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짜증이 나는 경우는 보통 뭔가 컨트롤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인데, 같은 직군에서 오래 뭉개다 보니 업무에 관련된 일들은 어느 정도 해결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업무 외 생활은 다이너미즘이 떨어져서 좀처럼 짜증 날만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일상에서 짜증이 폭발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은데, 그중 하나가 전원 콘센트에 플러그를 연결하는 일이다. 


전원 콘센트는 - 바깥에 보이기 창피한 삼수생 아들내미처럼 - 대부분 눈에 안 띄는 벽에 붙어 있거나 책상 안쪽 바닥 같은 곳에 놓여있기 때문에, 플러그를 연결하려면 눈으로 위치를 확인한 이후에 몸을 비틀고 손을 뻗어 대충 그 위치로 플러그를 들이 밀고는 감으로 쑤셔 넣어야 한다. 하지만, 콘센트의 구멍을 직소퍼즐 크리에이터가 디자인했는지 대부분 대각선으로 묘하게 비틀어 뚫어놓았기 때문에, 도무지 한 번에 제대로 연결을 할 수가 없다. 어떤 콘센트는 플러그용 구멍 외에 접지나 나사용 구멍이 함께 있는 경우도 있는데 - 물론 나름대로 용도가 있겠지만 - 콘센트에 꽂으려 할 때 한쪽 플러그를 그런 잘못된 구멍에 고정시키고 다른 한쪽을 밀어 넣으려고 용을 쓰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게 문제다. 들여다볼 수도 없는 콘센트 안을 상상하며 플러그를 360도 돌렸는데도 나머지 구멍 하나를 찾지 못하게 되면 정말 열통이 터져 쓰러질 것만 같다. 가끔은 전원 공급을 포기하고 콘센트를 슬레지해머로 갈겨 부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물론 돌리다가 플러그가 부러진 적도 있음)



다들 많이 경험해봤겠지만 USB를 연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직사각형 형태의 USB-A 타입 플러그는 진심으로 미친 사람이 설계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이 타입의 플러그는 직사각형 형태로, 위쪽은 비어있고 밑은 플라스틱 바닥 위에 접지가 붙어있는 구조이다. 이 플러그를 끼우는 소켓 쪽도 동일한 구조로 되어있어 서로 반대로 끼워 물리게 된다. 이 케이블은 정말 하루에도 많게는 수십 번 끼웠다 뺐다 해야 하는데 어떻게 매번 플러그 안쪽을 들여다본 후에 끼우냐고요. 플러그를 들여다본다 해도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꽂게 되는 소켓도 살펴봐야 제대로 악수하듯 물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또 문제다. 플러그가 벽에 있거나 피씨 바닥에 있으면 그걸 들여다보기도 힘들고, 허리를 굽혀 들여다봐도 대부분 어두운 쪽이라 보이지가 않잖아!(상상하다 보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음. 죄송) 그래서, 보통 한번 밀어 넣어 보고, 안 들어가면 다시 뒤집어서 쑤셔 넣는데, 이게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게 두 번 다 안 들어가는 경우가 70%가 넘는다.(왜죠? 세 번째 뒤집으면 그때야 들어감) 뭐 분석이고 뭐고 하기도 싫고, 짜증 나서 그냥 콱 밀어 넣다가 소켓이나 플러그가 부서져 버린 경우도 꽤 있다. 작년에 십오만 원짜리 로지텍 마우스의 동글을 소켓에 끼워 넣다가 랩탑과 마우스가 둘 다 아작 났던 경우가 아직도 - 밤에 자려고 눈을 감으면 - 떠오른다. 소켓이 더 작은 피라미드 형태의 USB 플러그도 다 마찬가지다. 진심으로 플러그를 좌우/위아래 대칭으로 설계해 준 USB-C 타입 개발자에게는 - 한 달에 10불 정도라면 기꺼이 - 재능 칭찬 구독이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다.


마지막은 요즘 팬데믹 상황에서 최첨단 기술이 재앙이 되어버린 예의 레퍼런스인 아이폰의 페이스 ID. 하루 종일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폰을 열 때마다 패스워드를 입력하거나 마스크를 잡아내려야 하는 게 정말 참기 힘들 정도로 불편하다. 패스워드를 입력하려 해도 어느 정도 - 스마트폰이 '현재 제 앞에 인간의 면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인지할 수 있는 정도 - 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 그 분노를 배가시키는데, 폰은 정말 하루에 수백 번은 열지 않나요? 생각만 해도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아이폰에 페이스 ID를 유일한 생체 기반 언락 솔루션으로 탑재하기로 결정한 - 누군지 모르니 그냥 - 팀 쿡을, 우한 동물 시작에서 박쥐를 우걱우걱 씹어먹어 코로나-19를 처음 퍼뜨린 누군가보다도 더, 지구상에서 제거하고 싶어진다. 특히 이 페이스 ID 문제는 이미 현세대의 넘버원 고난이 되었고, '사회적 거리두기'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고통의 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 한두 달만 더 지속된다면 팀 쿡에게 스페이스 X의 달 여행 편도 여행권을 선사하는 클라우드 펀딩이 생길지도 모른다. 


...


세 가지나 한꺼번에 쏟아내는 바람에 내가 평소에 짜증을 자주 내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난 정말 짜증을 거의 안내는 편이라는 걸 다시 한번 말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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