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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Apr 19. 2020

가을 하늘을 품은 봄날과 아이스커피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오랜만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성수동으로 자전거를 달렸다. 반팔 티에 플리스만 걸쳤는데도 바람 깊은 한강변을 만만하게 달릴만했다. 바야흐로 봄이다.

토끼굴을 통해 한강을 빠져나와 서울 숲 근처 길가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이젠 아이스커피를 마셔도 괜찮은 계절이니까. 날씨가 좋아서 커피를 들고 카페 바깥쪽의 의자에 잠깐 앉았는데,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직 일러서 그런지 거리에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텅 빈 도로 쪽을 바라보고 앉아있으니 세기말, 바이러스로 인류가 사멸해 버린 도시에 홀로 남아있는 것처럼 조용했다. 백악기 말 공룡이 멸망했을 때에는 지구와 소행성이 충돌해서 먼지구름으로 수개월 동안 햇빛을 볼 수 없었다는데, 바이러스는 지구에서 봄과 따뜻한 햇살까지 빼앗아갈 만한 힘은 없나 보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아침 햇살 밑에 아직은 길게 늘어져있는 전봇대 그림자를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또다시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그림자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커피를 집으려다가 잘못 치는 바람에 나무 의자에 커피를 조금 쏟고 말았다. 포스 앞에서 냅킨을 가져와 의자 바깥으로 음료를 쓸어내고는 마를 때까지 그 주변을 문질러 댔다. 바짝 마르고 나니 언제 커피를 쏟았냐는 듯 감쪽같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중국의 공장들이 모두 휴일인 건지 잔을 들어 머리 위로 들면 블루 라군이 담뿍 담길 것처럼 파랬다. '앙: 단팥인생 이야기'처럼 배경음악 없이 꽤 오래 앉아있다가는 이어폰을 꽂고 Eddie Higgins Trio의 All The Things You Are를 플레이시켰다. 마음에 드는 날은 음악으로 바니쉬 처리를 해줄 필요가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을 빠져나와 햇살을 맞이하는 듯한 서울의 오늘을 음악과 함께 조금 더 오래 기억하고 싶었던 거지만, 나중에 이 곡을 들으면 아스팔트 위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움직이던 전봇대 그림자만 생각날지도 모른다.


'뭐 그러면 좀 어때?'


좋아하는 음악은 아직 올봄에 아파트 앞 벚꽃나무에서 떨어져 버린 꽃잎만큼이나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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