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 - 죽음
리디 셀렉트에서 얼마 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인 ‘죽음’을 읽게 되었습니다. 가입해두고는 딱히 제대로 감상한 책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 책은 처음으로 리디 셀렉트에서 완독 한 작품이기도 해요. 딱히 추천할 만큼 재미있지는 않지만, 다 읽긴 했으니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아무래도 그 힘은 제게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개미’로 처음 알게 된 작가예요.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두 개의 사건이 교차 서술되다가 묘한 지점에서 교차되는 전개 방식이나, 작중 접할 수 있는 개미에 대한 다양한 지식에 감동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언제 시간 날 때 - 실망할 수도 있지만 -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니까요? 하지만, 그 이후 읽었던 그의 소설은 대부분 그다지 재미가 없었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우리나라에서 꽤 인지도가 높은 편이지만, 영어로 번역된 책은 ‘개미 Empire of Ants’ 하나라는 것도 꽤 재미있죠.
‘죽음’에 대한 감상 전에 너무 평가절하하는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 같긴 하지만,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한 SF적 판타지 소설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그의 작품들은 - 개미를 제외하고는 - 어느 취향의 독자들도 제대로 만족시킬 만큼의 퀄리티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문체도 그다지 끌리지 않아서, 그의 책들을 꽤 많이 읽었지만 하나같이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어요.
작가가 죽음이나 사후세계 같은 쪽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소재나 전개들이 작품마다 비슷비슷한 것도 큰 단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한 관심사에서도 여러 독창적인 전개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작가적 능력이 많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죽음’은 작가인 ‘가브리엘 웰즈’가 살해당한 후 영매인 ‘뤼시 필리피니’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살해를 조사하여 범인을 찾아낸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어요. 한마디로 진행은 뻔하고, 결말은 어이없다고 해두죠. 중간쯤부터 지루해서 책을 덮고 싶었지만 범인이 궁금해서 끝까지 읽었는데, 두 페이지 남짓으로 정리한 거지 같은 결말에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적어도 내겐 기억에 남는 반전 결말 중 가히 최악이었네요.
작품들이 술술 읽히는 것은 분명히 안 읽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은 분명히 술술 읽히는 편에 속하죠. 하지만, 분명히 그것 외에 뭔가 다른 것이 하나 정도는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들은 여기서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호기심이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하는 경외심도 좋고, ‘빨리 읽어버리는 게 아까와서 조금 천천히 읽어야겠어.’하는 생각이 들어도 좋습니다. 적어도 작가라면 이 책을 좋아하게 될 이유를 하나쯤은 만들어 줘야 한다는 거죠.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죽음의 주인공인 ‘가브리엘 웰즈’에 자신을 투영하여 - 물론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느낌이 든 캐릭터들이 종종 있었지만 - 문단에서 받는 평가나 대우,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그 부분도 성찰보다는 변명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다음 작품이 기대되지 않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지우기 위해서는 그에게 큰 전환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으면 한번 보세요. 두 권이지만 엄청 빨리 읽히기는 해서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는 않으실 테니 말이죠. 재미는 별로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