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평형, 전용 84에서 꾸는 나의 꿈
이번 주말도 집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서울 확진자가 7000명을 육박하고 있다는 기사에 화들짝 겁을 먹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오히려 나는 이런 데에 조금 초연한 편이다.) 날은 춥고, 아기들은 어리고, 갈 데가 없다.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도 큰 아이를 출산한 19년도 이래로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고, 그 해 겨울 돌쟁이 아기를 데리고 25평 신혼집에서 국민 평형이라는 전용 84, 32평 아파트로 집을 옮긴 이후로는 더더욱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서른 두 평의 방 세 개짜리 판상형 아파트는 세 식구에게 참말로 크고도 안온하고도 근사했다. 굳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이 안에서의 생활이 온종일 분주하게 바빴고 이 집을 꾸미고 닦고 애정 하며 입가에 미소가 벌씬 벌씬 지어졌다.
이사하고 맞는 첫 크리스마스이자 결혼기념일에 여의도에 근사한 호텔을 예약해두었는데, 그날 저녁 하필 남편은 덜컥 위염이 오고야 말았다. 밤새 좁디좁은 카펫 룸에서 걷지 못하는 아이와 그리고 끙끙 앓는 남편과 씨름하다가 동이 트자마자 조식도 먹지 않고 우리는 도망치듯 넓고 쾌적한 집으로 돌아왔다. 하룻밤 짐이어도 아기를 데리고 가니 뭐가 이리도 바리바리 많은지 집에 돌아와 옷 가방을 던져 놓고 나서야 비로소 온몸을 감싸던 긴장이 허물어졌다. 아기를 재워두고 조명을 낮추고 차를 마셔 놀란 속을 달래며 남편은 아, 우리 집 너무 좋다! 를 몇 번이고 중얼거렸는지.
그 넓고 좋은 나의 서른 두 평 아파트가 어느덧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사한 지 겨우 2년이 되었을 뿐인데. 새 물건이 주는 만족감이 그리 오래가지 않듯이, 나의 새 집이 주는 만족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도 손쉽게 한풀 두풀 꺾여간다. 그사이 식구가 둘이 늘었다. 늦은 나이에 새 진로를 찾아보겠다며 수험 공부를 시작한 나의 남동생이 문간방을 차지하고 들어섰고, 본인이 차지하는 자리는 미미하지만 아기가 하나 더 생기면서 큰 애 키우고 집어넣었던 덩치 큰 육아용품들이 다시 우후죽순 거실로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전용 84만 가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던 나의 말이 무색하게 어느덧 그 여한은 방 네 개짜리 40평대 아파트로 향해가기 시작했다.
오늘의 집이라는 플랫폼도 문제였다. 아주 큰 문제였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도 많지만 어쩜 그리도 우아한 취향과 세련된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나는지. 잡지책에서나 구경할 수 있었던, 연예인들의 한강변 펜트하우스 같아 보이기만 하던 근사한 집들이 스크롤 한가득 즐비한 거 보니 이제 그런 집은 어디에나 있는 모양이다. 실은 대부분의 집이 '촬영용'일 것이라 생각하며 생활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세간이 싱크대 밖으로 하나도 나와 있지 않은 그런 부엌이라던지) 집들의 잔상을 지워내며 신포도와 같은 자기 위로도 해보았으나, 지난달에 남편 회사 후배의 집에 초대받은 이후로 나는 이 의심도 속 쓰리게 접어두어야 했다. '그런 집'은 과연 실재했다! 한치의 허접함이 없이 시선 닿는 곳 하나하나 정교하게 꾸며진 그녀의 집을 보며, 나는 얼마 전까지 소파를 갖다 버려야 한다고 남편을 들들 볶다가 돌연 아, 예쁜 소파가 사고 싶다..라고 떠올리고야 만다. 흠칫 그러는 나 자신이 한심해서 쓴웃음이 났다. 우리 집 남자들의 혀 차는 소리가 공명하듯 머릿속을 맴돌았다. 쯧쯧, 여자들이란...
나는 매일 밤 호갱노노 어플을 켜놓고 지도를 이리 찍었다 저리 찍었다 하며 눈으로 집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인건비 상승으로 요즘 인테리어는 평당 200도 든다고 하는데 차라리 좀 더(?) 돈을 보태어 집을 옮겨보자 싶은 생각이다. 지금 사는 집을 팔고 n억 원의 대출을 상환하고 여기에 n억 원을 보태고 수천만 원의 취등록세와 양도세를 지불하고 나면 아마 이 정도로는 옮겨갈 수 있겠다!라는 식의 복잡한 산식은 머릿속에서 수회를 거듭하며 간소화되었지만 은행 어플을 켜서 잔고를 확인하는 순간 다시금 계산은 아득해지고야 만다. 월급쟁이 둘이서 얼마나 돈을 쌓아가야 이 n억원이 달성되는지에 대한 계산은 언제나 알쏭달쏭했다. 이 n억 원은 실제 가져보지 않았으므로 상당히 관념적이고도 탄력적인 수치가 되어 때로는 금방 손아귀에 잡힐 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죽을 때까지 손에 쥐어볼 수 없을 거란 절망감을 주기도 했다. 집이 있으되 이 추운 겨울 길가에 내몰린 마냥 나의 마음은 거의 홈리스에 가까워졌다.
답답한 마음을 무엇으로 달래 볼까 싶어 궁여지책으로 집을 치워본다. 아무리 욱여넣어도 주방 살림들은 꼭 어딘가에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나오는 데다가 거실에는 어린이날 선물로 친정에서 사주신 거대한 트램펄린과 사용 연령이 큰애와 작은애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어 엉성하게 자리만 차지하는 알록달록하고 부피 큰 장난감들이 즐비했다. 오늘의 집에는 아기 키우는 집도 많이들 선정되지만, 그 누구의 거실도 이런 난장판은 아니었거늘. 이 모든 것이 집이 작아서 생기는 문제인 건지 나의 센스 부족인 건지 뾰족한 정답이 없어 이제는 답답할 지경이다. 누가 좀 알려주시길? (너무 답정너 인가...)
싫건 좋건 여기서 살아가야 한다. 이게 나의 집이고 삶이니까. 남서향이라 오후 늦게까지 온 집안으로 깊숙하게 햇살이 들어오는 것이 약간의 위안이 된다.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 틈바구니에서 그나마 반쪽짜리 하늘이 보이는 전망 탓에 이따금씩은 제법 괜찮은 노을의 풍경을 목도하기도 한다. 시차를 두고 그때그때 급히 사모으느라 "톤 앤 매너"따위 존재하지 않는 중구난방 저렴한 가구들이 여기저기 아웅다웅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마는 그래도 아기매트 틈 사이로 기가 막히게 틀에 맞춰 조립한 듯 자리한 것이 용하다. 우리 동네에도 '오늘의 집'에 선정된 영예를 누린 세대가 있었는데 최근 그녀가 당근 마켓에 내놓은 마티스의 포스터 한 점을 구입했다. 흔하고 흔한 그림이라 당장 쿠팡으로 로켓배송도 가능한 물건이었지만 그녀의 세련된 거실에 머물다 온 소품이니까 늦은 밤 약속을 잡아 어렵게도 공수해 왔다. 그림을 거느라 액자 레일도 처음 구매해 설치해보고 한바탕 난리를 피운 다음, 나도 생활의 흔적을 감춘, 우리 집의 연출되고 꾸며진 사진을 한 점 찍어보았다. 프레임 밖을 한 뼘만 벗어나면 어딘지 엉성한 잡티가 새어 나올 새라 나는 신중하게 초점을 당겼다. 찍어놓고 보니 이만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도 걸어놓고 친구들에게도 자랑해보았다. 20대 때는 잔뜩 꾸미고 보정을 한 나 자신의 사진을 남들에게 자랑하곤 했는데 이제는 이 집이 나의 얼굴이다. 부단히 씻고 가꾸고 꾸미며 살아가야 한다.
전형적인 판상형 아파트라 문 앞에 작은 방이 하나, 거실을 지나서 안방 맞은편에 작은 방이 또 하나, 이렇게 방이 세 개인데 문간방에서는 남동생이 그리고 안방 맞은편 작은 방에서는 큰 아이와 남편이 잠을 자고 있다. 이제 갓 100일 지난 둘째 아이의 분리 수면을 시도하고 싶은데 방이 모자라 요즘 안방 그 큰 침대에 아이를 혼자 누이고 애미는 거실 소파에 나와 새우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 다른 건 몰라도 방은 정말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 여한이 없겠다!라고 한탄하느라 죄 없는 남편이 오늘도 밥상머리 타박을 듣는다. 99칸 한옥집 정도는 살아야 너의 그 여한을 죄다 없앨 수 있을 텐데 소인이 매우 부족하여 겨우 세 칸짜리 아파트에 너를 거처하게 하여 그저 애석하다며 다음 생엔 꼭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대궐 같은 집에서 나인들 거느리고 사시라며 남편은 고기쌈을 크게 접어 내 입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이건 이제 그만 입을 다물라는 소리다. 우물우물 양 볼 가득 고기를 씹어 삼키며 아 오늘도 이 인간이 고기를 기가 막히게 구워냈다고 감탄하느라 잠시 찌푸린 인상을 펴보았다. 우리 집 남자들은 그저 고기라면 세상의 모든 시름을 다 잊는 존재들인데 같이 사니 그 또한 닮아가는지 오늘 저녁은 고기 냄새가 자욱이 배어들어간 우리 집이 그다지 미워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