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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월 Mar 26. 2020

때론 모모처럼, 모모와 함께 살고 싶었다.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은 30여 년간 비어있던 나미야 잡화점에 삼인조 도둑이 숨어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뜻밖에도 과거에서부터 온 편지에 적힌 고민상담에 답장을 보내주며 과거 사람들의 고민과 그들이 살아가는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중, 어떤 이가 장난으로 거짓 이야기를 꾸며 고민상자에 넣어 놓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고민에도 주인은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준다. 소설의 한 구절이다.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돼”    


나미야 할아버지의 말처럼 이 사람은 나처럼 고민을 쉽게 타인에게 털어 놓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장난을, 거짓을 빙자해 자기 고민과 속마음을 털어 놓았던 건 아닐까? 나라면, 어떤 식으로 고민을 털어놨을까. 그리고 반대로 고민을 털어 놓는 사람에게 어떤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나미야 할아버지처럼 설령 장난이어도, 과장된 이야기어도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의 말을 전해줄 수 있을까?   

   

당신은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위로를 해주는 사람인가?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는 사람인가?     


‘고민’은 사전적 의미로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운다는 뜻이다. ‘위로’란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을 말한다. 어찌보면 이 두 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나는 고민이나 나에게 벌어진 사건들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정신과를 다니기 전까지는 그랬다. 고민을 털어놓는 다는 건 마치 내 안에 보여줘서는 안 될 상처를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설령 고민과 힘듦을 털어 놓는다 해도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당시의 상황이 복기 되면서 내가 더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았다. 또, 상대에게 이야기한 후에 마음의 위안을 얻지 못하면 더 힘들지 않을까? 상대에게 푸념을 더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나 혼자 강이나 하천을 찾아 고요히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서 위안을 얻었다. 일렁이는 물을 잠자코 보다 보면 나의 고민도 물을 따라 흘러 내려가듯이 마음이 고요해졌다. 어떤 이에게 털어 놓는 것보다 큰 효과가 있었다. 나는 고민을 차분히 전달하는데 재능이 없었나보다. 그래서 잘 들어주는 것보다 잘 이이야기 하는 게 힘들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랬던 내가 정신과를 다니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하지 못하는 고민을 선생님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진짜 내 고민을 이야기하는데까지도 1여년의 시간이 지나서였지만 말이다. 처음에 나는 차마 내 진짜 고민과 걱정과 두려움과 불안을 털어 놓을 수 없었다. 그저 핵심이 없는 겉이야기로 선생님을 대했다. 물론 선생님은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상담을 해주셨다. 나는 그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았던 적이 많았다. 그렇게 나는 힘겹게 내 속마음을 조금씩 꺼내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친구들에게는 내 힘든 이야기를 하며 위로를 받기보다 사람들의 힘든 이야기, 고민 등을 들어주는 것이 더 편하다. 사람들도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가끔은 듣는 것이 지치는 기분이 들 정도니 말이다. 

    



 소설책 ‘모모’의 주인공 모모는 경청을 잘 하는 아이로, 사람들에게 위안과 위로를 안겨준다.  “아무튼 모모에게 가보게!” 말을 온 마음으로 들어주는 사람, 말하다보면 저절로 분별이 생기고,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기분까지 좋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라는 구절이 모모를 한 마디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에 봄바람을 집어넣는 아이였다. 나도 그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며 미소를 짓고 책을 봤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안에도 모모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원해서가 아닌 사람들이 나에게 이야기하는 걸 편안해하는 것에 익숙해서 듣는 것이 편한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든 이유가 있다. 위에서 살짝 언급한 것처럼 이제 내가 모모처럼 경청하는 게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경청해서 들어주면 그 사람이 더 나아지는 걸 보고 싶고, 우리 관계가 더 즐거워지는 걸 보고 싶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 번 경청해서 들어주면 다음엔 또 같은 이야기 인 듯 한 이야기를 또 꺼내 온다. 그저 나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이야기는 우리 사이에 필요하지 않게 됐다는 걸 느껴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양가감정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한 편으로는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의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으면서도, 한 편으로 이제 나에게 그만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내 안에 있던 모모는 검은 그림자에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나는 모모처럼, 나미야 할아버지처럼 다른 사람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고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되도록 다시 노력할 것이다. 물론, 내 스스로에게도 모모처럼 대할 것이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을 더 믿고 내 고민을 털어놓도록 노력할 것이다. 정신과를 다니면서 큰 위로를 받았으니까 말이다. 누군가에게 미소를 짓게 한다는 것은 참 멋진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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